[인문]프랑스 문학과 영상문학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7.07.1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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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말고사를 위해서
프랑스 영상문학 수업때 들은 자료를 써머리 했습니다.
목차
1.프랑스 뉴웨이브인 누벨바그(Nouvell Vague)에 대해서 서술하시
1)1958~1962년
2)1966~68년
-감독들 특징
본문내용
1.프랑스 뉴웨이브인 누벨바그(Nouvell Vague)에 대해서 서술하시오.
운동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영화사상 대단히 중요한 순간으로서 195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이 용어는 프랑스의 새로운 세대 영화감독들-선구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1950년대 영화의 주류를 이룬 ①문학작품의 각색, ②코스튬드라마, ③대규모의 합작품-카이예 그룹이‘아버지의 영화(le cinema de papa)라고 부른 영화들-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프랑스어인 누벨바그는 애초에 이 영화감독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원래 1950년대 후반 중도 좌파적 성향의 주간지인 ‘렉스프레스’의 편집장 여류언론인 ‘프랑수아즈 지루’가 새롭게 떠오르는 청년 계급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를 만든 28세 감독 로제 바딤과 청춘스타 제라르 필립, 브리지트 바르도 의 인기로 인해 급속히 당시 영화 추세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 되었다. 즉 당시 제작자들이 젊은이들이-영화배우든 감독이든 간에- 만든 영화를 원했다는 것을 말한다.
1930~50년대를 지배했던 구세대의 영화감독들의 노쇠와 사망 등의 이유로 그 간극이 더 벌어져서, 누벨바그 세대의 영화감독들(1959~62년에 약 170여명) 등장할 수 있는 추진력이 되었다. 이 젊은 감독들이 누벨바그라는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으며, 새로운 청년 영화에 대한 요구는 이 모든 영화를 ‘젊은이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신화를 낳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누벨바그 초기의 악명 높은 작품들이 주로 영향력 있는 카이에 그룹 비평가출신들(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리베트)에게서 나와서 이 모든 영화들이 나왔기 때문에, 기성 감독 밑에서 수업을 거치지 않았다고 통상적으로 믿고 있었으나 사실은 이와는 매우 달랐다. ‘청년 영화’와 연관된 감독들은 거의 30대 초반이었으며, 영화조감독 출신도 45%나 되었다.
또 1958년 제 5공화국의 출범과 일치한다는 신화도 있었다. ‘미남세르쥬’(샤브롤), ‘400번의 구타’(트뤼포) 두 영화가 뉴 웨이브의 출발 신호 역할을 했고 ‘네 멋대로 해라’(고다르),‘히로시마 내 사랑(알랭레네)가 뒤를 이었다고 받아들여졌으나 사실은 1950년대부터 ‘카이에 뒤 시네마’에 실린 작가와 미장센의 우위를 주장한 이론적인 글들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