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 최초 등록일
- 2007.07.1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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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레포트 자료입니다..
이 레포트 작성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 저의 지식이 된거 같아 기쁨니다.~
좋은 자료가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목차
1. 인천항 개요.
2. 인천항의 모습
본문내용
1. 인천항 개요.
인천항은 1883년 2월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일반상업항구로 개항한 항구이다.
한적한 어촌포구였던 인천항은 개항과 함께 일본, 청국과의 정치, 외교, 군사, 경제활동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고, 개화의 물결 속에서 국제항으로서의 기반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인천항은 지리적 중요성과는 달리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여 만조시 할때는 10m까지의 조수 간만의 차가 발생하여 자연적인 악조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적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항만개발사업이 필연적이었다. 갑문식 갑거시설 확보를 주요 추진계획으로 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우선 이런 계획에 따라 1911년 6월 현재 1부두 자리에서 본격적인 인공항만의 축조와 선거설비 등의 공사에 착수했다. 조수간만의 차와 관계없이 선박의 입출과 접안 및 하역이 가능한 2중 갑문식 갑거(일명 DOCK)를 축조하기에 이른것 이다.
공사가 준공된 때는 7년여만인 1981년 10월, 3만여평의 수면적을 확보, 4천5백톤급 3척과 2천톤급 4척이 동시에 접안해 연간 1백30만톤의 화물을 하역할 수 있었다.
최초의 근대적 갑문식 전천후 항만시설인 제 1선거가 건설된 것이다. 다음은 제 2선거 축조. 일제는 중일전쟁 수행상 필요에 따라 8천톤급 선박이 입거할 수 있는 제 2선거 건설계획을 세우고 9년에 걸친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천으로 인해 공사는 30% 공정에서 중단된다. 이어 해방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인천항의 해상물동량은 62년 1백30만톤에서 66년 1백 91만5천톤으로 급증하지만 항만시설은 일제때 건설한 제 1선거와 몇개의 물량장 분이었다. 이에 정부는 하역 및 대형선박의 접안능력을 높이기 위해 66년부터 74년까지 최대 5만톤급 선박까지 접안이 가능한 제 2선거 건설을 추진했다.
65년엔 서울 인천을 특정지역지정으로 공고하고 이듬해 6월 인천항 제 2도크 공사에 들어갔다. 당초계획은 총공사비 26억원을 들여 안벽 3천8백60m와 갑거 2만톤1기, 8천톤급 1기, 갑문 4연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경제적 타당성과 해상화물량을 감안할 때 타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