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사]퇴계이황의 팔단 도인법*중국의 도인법포함
- 최초 등록일
- 2007.06.20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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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체육사에 조선시대 퇴계이황의 도인법과 전체의 도인법에 대한 자료이구^^
아주 잘 정리된 자료이며, A4 12장 꽉 찬 자료입니다.
목차
□ Who is he?
□ 중국과의 관계
□ 活人心方
□ 도인법에 자세
□ 영향
본문내용
□ Who is he?
☞ 출생
퇴계의 성은 이, 이름은 황이다. 퇴계는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현 노송정 종택
태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사 이식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와 춘천 박씨 두 분이다. 재취로 들어온 박씨
가 서린, 의, 해, 증, 황, 등 5형제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막내이다.
☞ 초년기
출생에서 33세까지 유교경전을 연구하는데 열중하였던 수학기 퇴계의 부친은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 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퇴계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게 되었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당시 맏형 한 분만 결혼하였을 뿐 다른 형제는 모두 어려서,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가 홀로 농사와 누에치기로 이어가는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어머니는 전처에는 난 자녀를 차별하지 않고 길렀다고 한다. 퇴계가 “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준 분은 어머니”라 할만큼 어머니는 “과부의 자식은 몇 백배 더 조신해야 한다”는 엄한 기법을 세워 자녀를 교육하였다.
☞ 중년기
34세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여 49세 때 풍기 군수를 사직하고 귀향할 때까지의 임관기 퇴계는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43세 때까지 대체로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이때에도 끊임없이 학문 연마에 정진하였다. 종 3품인 성균과 대사성에 이른 43세의 퇴계는 이때부터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는다. 이후 52세 때 까지 그는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관료 샐활에서 벗어나 야인 생활로 접어드는 일종의 과도기를 준비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