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성립과 발전
- 최초 등록일
- 2007.06.16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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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의 성립과 연구동향, 주민구성, 위치와 영역,고고학적 문화유산 등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발해사의 전개
2. 연구동향
3. 발해의 주민구성
4. 발해의 영역과 위치
5. 발해의 고고학적 문화유산-고분과 토기의 주인공
6. 발해사의 해결과제
본문내용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만인 698년 건국한 왕조로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으로부터 마지막 왕 대인선(大諲譔)에 이르기까지 15대왕이 재위하였다. 고왕 대조영은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돌권 및 신라 등에 사신을 파견하여 건국의 명분을 대외에 과시하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면에 집중한 나머지 정치조직을 정비할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고왕의 뒤를 이은 무왕은 안으로 국가의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밖으로는 영토를 크게 넓혔다. 무왕의 뒤를 이은 문왕도 수도를 2차례나 옮기면서 내정에 힘을 기울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대내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정치발전을 이루었다. 문왕대에 비로소 발해는 당으로부터 책봉작위를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발해의 국세와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안사의 난 등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당이 발해의 도움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문왕 이후 귀족층의 권력쟁탈전이 빈번하다. 10대 선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왕권이 안정되고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어 영토가 크게 확대되었다. 전국은 5경(京) 15부(府) 62주(州)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고 13대 대현석대(大玄錫代)에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란 칭호를 듣기까지 하였다. 발해의 중앙정치제도는 장자상속제와 독자적 연호의사용등을 통해 전제적이고 자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김정배 <고대사 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