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4판]8.5.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8.11. 연희의 양상과 연극의 저류
- 최초 등록일
- 2007.05.0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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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4판 요약정리 한것입니다.
많은 도움되길 바래요~^^*
목차
중세후기문학, 제 2 조선전기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 산문의 영역 확대와 소설의 출현
8.5.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8.5.1. 관인문학의 성격
8.5.2. 집현전 출신의 문인들
8.5.3. 전성기의 수준과 문제의식
8.5.4. 해동강서파
8.6. 사림문학, 심성에서 우러나는 소리
8.6.1. 김종직과 그 제자들
8.6.2. 왕도정치의 이상
8.6.3. 서경덕, 이황 이후의 방향
8.6.4. 선조 때의 상황
8.7. 방외인 문학에 나타난 반감의 양상
8.7.1. 김시습
8.7.2. 도피와 반발의 자취
8.7.3. 미천한 처지에서 겪는 고통
8.7.4. 삼당시인과 임제
8.8. 불교문학의 시련과 변모
8.8.1. 척불의 타격
8.8.2. 기화가 찾은 길
8.8.3. 보우의 고민
8.8.4. 휴정이 일으킨 바람
8.9. 산문의 영역 확대
8.9.1. 역사 서술의 양상
8.9.2. 잡기의 모습
8.9.3. 가전체와 몽유록
8.9.4. 골계전
8.9.5. 국문을 사용한 편지와 제문
8.10. 소설의 출현
8.10.1. 소설의 개념과 특성
8.10.2. <금오신화>
8.11. 연희의 양상과 연극의 저류
8.11.1. 나라에서 벌이는 연희
8.11.2. 소학지희
8.11.3. 꼭두각시 놀음의 행방
8.11.4. 탈춤의 저류를 찾아서
본문내용
8.5. 관인문학과 왕조사업의 표리
8.5.1. 관인문학의 성격
조선왕조를 건국한 주체세력은 원래 지방 향리 출신이었으나 사대부 신분인 사족과 향리 신분인 이족을 엄격하게 갈라놓고 이족이 사족으로 성장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해서 지배신분의 확대를 막았다. 민본 정치를 표방하고 훈민을 긴요한 과제로 삼은 것은 전에 없던 일이지만 그것은 사대부가 권리를 가지고 책임을 진다는 조건에서 그런 시책 펴고자 하였던 것이다. 관직이나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대부는 계속 늘어나 사대부 상호간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어 사화(士禍)가 일어났다.
사대부는 둘로 나뉘었다. 권력과 토지를 차지한 개국공신 및 개국 후의 공신, 그리고 그 후예는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훈구파와 혜택에서 제외되어 지방의 중소지주 노릇을 하면서 중앙 정계로 진출할 것을 염원하고, 왕조 창건의 명분을 철저하게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사림파가 그것이다.
문학에는‘치인(治人)’을 담당하는 외면적이고 공적인 문학과 ‘수기(修己)’에 힘쓰는 내면적이고 사적인 문학 있다는 것은 양쪽에서 함께 인정하면서 어느 쪽을 더욱 중요시해야 하는가를 두고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훈구파는 ‘치인’의 문학이 우선 과제라고 하면서, 사장(詞章)이라고 일컬어지던 문장수식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사림파는 도학의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문학이 ‘수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곧 도학파의 노선이다.
훈구파든 사림파든 신유학 또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받들고 문학에서 추구하는 가치관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원칙적 의견이 일치했으면서도 성리학과 문학의 관계에 관한 견해는 달랐다. 훈구파는 도를 꿰고 있는 문을 소중하게 평가하는 관도(貫道)의 문학관을 내세웠다. 사림파는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도를 싣는 것이 문의 사명이고 문이 그 자체로 평가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재도(載道)의 노선을 택해 새로운 문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장파와 도학파의 논쟁은 과거제도를 두고도 벌어졌다. 명경쪽은 응시자가 거의 없고 제술만 인기 모았다. 강경파는 경전 공부 위주 과거 시행해 통치이념과 제도 확고 방침을 굳혔는데, 보수적 성향 훈구파가 등장하면서 사장 존중 방침이 채택되었고 과거에서는 문장이 더욱 격식화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