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기생충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7.02.1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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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생충의 역사, 종류, 감염경로에 대한 설명입니다.
목차
1. 기생충의 역사
2. 우리 나라의 기생충 감염
3. 기생충의 종류
4. 기생충의 감염경로
5. 기생충 진단법
본문내용
1. 기생충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로서, 일본에서 간흡충의 제2중간숙주가 민물생선이라는 것을 밝힌 (1915) 고바야시 하루지로 (小林晴治郞) 박사가 조선총독부의원에 부임한 1916년이라고 생각된다.
고바야시박사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제2세균학교실(기생충학)의 교수로 재임하면서 해방 때까지 29년간 우리나라의 기생충 문제 전반에 대한 학술적인 기반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파리, 벼룩 등 곤충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쌓았고 저서 4권, 과학논문 447편을 발표하였다. 29년동안 고바야시 교실에서는 한국인이 두 사람만 근무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결국 학위를 못받았고, 다른 한 사람이 미국 패시픽대학 생물과 출신이었던 박태채 (朴泰采)인데 1940년까지 4년간 야생동물의 흡충 분류에 관한 논문 10편을 쓰고 1943년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기생충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게이오대학에서 조충(條蟲)의 면역학으로 학위를 취득한 한경순(韓京淳; 해방후 세브란스의과대학 기생충학교수)박사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허규교수 문하의 나순영(羅順榮)조교수 정도였다고 한다. 이 두분은 기생충학 전공지원자를 모아 집담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학회로 발전할 기틀을 마련하였으나 6.25가 발발하면서 납북되어 북한 기생충학의 기둥이 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의 기생충 문제는 악화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악화된 상태였다. 예를 들면 미국인이 방역연구소와 협력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대변검사를 1949년에 실시한 결과에는 회충 충란양성율 82.8%이라고 보고한 바 있으며, 당시 인구 약 2000만명의 회충 감염량은 5-10억마리로 추산될 정도이다.
장내 기생충뿐 아니라 간흡충, 폐흡충, 촌충, 말라리아, 이질아메바 등이 극도로 유행하였으나 사회적으로 급성전염병의 유행에 가리웠고, 전문가도 거의 없어 기생충질환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정도이었다.
전쟁기간동안 우리나라 기생충에 대한 중요 연구는 미군 등의 군의진이 하였다. 이 시기 우리의 연구는 육군의무시험소 기생충과, 이영춘 박사의 개정농촌 위생연구소 등에서 실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