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마틴루터의 생애를 읽고나서...
- 최초 등록일
- 2007.01.22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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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의 생애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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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루터는 1516년 자신의 선거후가 성인들의 유품을 통해서 면죄가 감해진다는 믿고 있음에 대해서 설교를 통해서 면죄를 비판했다. 뒤이어 성베드로 대성당용 면죄부가 판매되자 그는 그의 유명한 95개조의 논제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다. 사실 이 95개조의 논제는 토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논제를 일반 백성들에게 퍼뜨릴 조치를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학자들을 초청해서 토론을 벌이고 저명 인사들을 불러 그 뜻을 명확히 밝히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삽시간에 이 내용은 독일의 화재거리로 번져나갔다. 이어 교황 레오 10세에까지 보고 된다. 만약에 교황이 1년 뒤로 미루지 않고 교서를 그 때 당장 발표하면서 면죄 교리를 뚜렷이 밝히고 터무니 없는 폐습을 바로 잡았더라면 루터는 수그러졌을 지도 모른다. 자기 반대자들이 소동을 포기했더라면 언제라도 뒤로 물러설 참이었다. 그러나 교황은 이 탁발승을 콧대 높은 조소자를 시켜서 질식시켜 버리려는 편을 택했다. 그해 5월 하이델베르크에서 회의가 열렸다. 루터는 반대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걸어서 그곳을 간다. 전반적으로 루터는 개선장군과 같은 기분으로 갈때는 걸어갔지만 올 때는 마차를 타고 왔다
그의 논제가 인쇄되었다. 비텐베르크 대학생들은 훔치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이 책을 8백권이나 모아 선거후 대학당국 루터 몰래 불태워 버렸다. 루터는 이들의 성급함에 몹시 당황했다. 그는 할 수 없이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견해를 보다더 상세하게 알려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제 95개조 논제는 독일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8월 7일 루터는 로마에 출두해서 이 단과 명령불복종이라는 혐의에 답변하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60일간의 여유가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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