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멸망원인
- 최초 등록일
- 2007.01.1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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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멸망에 대한 정리한 내용입니다.
목차
1. 666년 정월 초하루, 산동의 태산
2. 고구려의 멸망 원인은 내분이었는가
3. 고구려의 내분은 외침의 연장이다
본문내용
고구려의 멸망 원인에 관한 이와 같은 인식은 해방 이후의 한국학계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다만 민족중심적 관점에서 고구려가 대당항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멸망하고 말았을 때, 그 원인을 내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던 형식 논리도 그러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내분론이라고 하더라도, 일제 식민사학과 해방 이후 한국학계가 뜻하는 함의에는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한국 현대사를 굴절시킨 군사 독재가 지속되는 동안 고구려의 멸망 원인으로 거론된 내분은 연개소문의 독재정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논의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역사가 오늘을 비추어 보는 거울의 역할도 없지 않음을 고려할 때에 가능한 역사인식일 수도 있었다. 우선 한국고대사에 관한 수준 높은 개설서에서 그러한 서술 내용의 일단을 인용해보기로 한다.
게다가 더욱 불리한 것은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독재정치 후유증으로 집권층 내부에서 심각한 정권쟁탈전이 전개된 사실이었다. 즉 맏아들 남생은 동생인 남건과 남산에게 쫓겨 서 옛 서울인 국내성으로 가서 아들 헌성(獻誠)을 적국인 당에 보내어 그 힘을 빌리려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淵淨土)는 12성을 들어 신라에 투항하 였는데, 이들 성에는 신라군이 배치되었다. 이같이 하여 내부의 결속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고구려의 운명을 재촉하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