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에 대한 정리 - 토속적 시
- 최초 등록일
- 2006.12.25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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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석의 생애와 문학세계 그리고 토속적인 서민정신과 모더니즘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토속적 소재와 시어 사용에 대한 작품분석등 백석에 대한 정리입니다.
리포터는 만점 받았구요 ~
목차
서 론
본 론
Ⅰ. 백석의 생애
Ⅱ. 백석의 문학세계
1. 정주라는 지역성과 백석 시의 출발
2. 토속적인 서민정신
3. 열거식 병렬법과 모더니즘의 방법
4. 어린이의 시점과 서사적 문체
5. 토속성의 소재와 시어
6. 떠돌이 삶과 고향 상실감
Ⅲ. 대표작 감상 및 분석
여우난골족(族),여승(女僧),고향
결 론
본문내용
서 론
백석은 일본 유학을 한 영문학도이고 그의 전기적 사실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정신과 근대문화에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그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장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은 다름 아닌 토속적 서민정신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1930년대라고 하면 우리 문단에서는 근대정신과 도시문명에 관심을 둔, 이른바 모더니즘의 사조와 그 세계가 지식인들을 사로잡던 때이다. 하지만 백석은 당대의 시인들이 보여줬던 이런 저런 유형의 모더니즘적인 정신구조나 그 시작세계와는 달리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고 또 자식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생각된 체험과 내용을 그의 작품으로 옮겨놓았다고 생각된다. 그럼 토속적인 서민정신을 중심으로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본 론
Ⅰ. 백석의 생애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 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참고 자료
김학동 「白石全集」, 새문사, 1990
박혜숙 「백석 -우리문화의 원형탐구와 떠돌이 삶」, 건국대학교출판부, 1995
정효구 「백석 」, 문학세계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