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주방언
- 최초 등록일
- 2006.12.17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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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사의 특성과 영향, 북송시대 작가 주방언에 대해 자세히 준비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주방언의 생애
2. 주방언의 사(詞)
3. 작품감상 (兰陵王-柳 , 滿庭芳)
4. 주방언의 사가 후대에 미친 영향
5. 맺음말
■ 참고자료
본문내용
1. 주방언의 생애
주방언(周邦彦)은 중국 북송(北宋) 때의 관료이자 사인(詞人)으로 자는 미성(美成), 호는 청진거사(淸眞居士)이다. 전당(錢塘:지금의 절강성 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으나 방종한 성격 때문에 고향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기도 했다. 원풍연간(元豊年間:1078∼1085)에 수도로 올라가 태학생(太學生) 시절을 보내던 중, 수도 개봉(開封)의 호사스러움을 노래한 《변도의 부(汴都賦)》를 헌상하여 신종(神宗)으로부터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태학정(太學正)으로 승진했는데 이 <변도부>는 신종(神宗)이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받아들여 그것을 시행한 후에 변모한 변경(汴京)의 제반 상황을 극찬하는 어조로 엮어낸 글이어서 신종(神宗)이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그 후 주방언은 신종(神宗)이 죽고 철종(哲宗)이 즉위하는데 따른 정국의 변화로 각지(各地)를 지방관으로 전전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사람과 옛 일들을 그리워하며 불평과 원망을 드러낸 작품을 수없이 적어내면서 자신의 침울돈좌(沈鬱頓挫)하고 감상처완(感傷凄婉)한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철종(哲宗) 말년(末年)부터 신법파(新法派)의 득세에 따라 다시 변경(汴京)에서 각종의 관직을 역임하고 휘종(徽宗) 때에는 국립음악기관을 관장하는 대성부(大晟府)의 제거(提擧)로 발탁되어 동료들과 옛 음을 토론하고, 옛 곡조를 심사하고 결정하여 중국 사율(詞律)과 사악(詞樂)의 정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다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온 몸에 학자풍이 배어있고 음악을 몹시 좋아하며 작곡에 능하였으므로 생전에 스스로를 ‘고곡주랑(顧曲周郞)’이라 부르기도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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