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와 조선미술
- 최초 등록일
- 2006.11.05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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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세계, 또 김홍도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에 대한 실제 사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단원 김홍도의 생애
(2) 단원 김홍도의 예술세계
(3) 단원 김홍도에 대한 오해와 실제
본문내용
(1) 단원 김홍도의 생애
단원은 1745년 영조 21년에 태어나 정조 재위 24년을 거쳐 순조 6년 1806년경까지 춘추 62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7세 전후에 명문 사대부 강세황으로부터 서화공부를 했는데 이 점이 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서화악에 고루 뛰어났던 비범한 스승으로부터 범상한 화원들은 갖추기 어려웠던 시문서화와 음악에 관한 폭넓은 교양까지도 전수받았거나 또는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강세황에게 공부를 배우지 않았다면, 단원은 화가가 못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조상들은 원래 하급 무관을 지냈고 조선 시대에는 의례적으로 직업이 세습되었던 데에 반해 단원은 그의 재능이 돋보였기에 화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성리학 사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성리학 아래에선 경세의 학문이 아닌 기예는 사소하게 여겨져 화원은 양반들은 기피하는 직업이었으며 가장 높아야 종 6품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단원은 화원 최고의 영광이랄 수 있는 어진 제작에 3번이나 참여하고, 의례적으로 어명을 받들어 금강산의 절경을 그렸으며 40세에는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 찰방으로 근무하고, 48세에는 충청도 연풍의 현감이 되어 고을 원님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일생동안 단원이 그린 그림들 중 중요한 역작들을 보자면 21세엔 <경현당수작도> 29·37·47세 때에는 국왕의 초상화 제작, 44세에 금강사군첩, 46세 수원 용주사의 후불탱, 51세에 임금이 행차하시는 모습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 <화성춘추팔경>, <을묘년화첩>, 52세엔 <단원절세보첩>등이 있습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