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나폴레옹 시기의 독일 민족주의
- 최초 등록일
- 2006.11.04
- 최종 저작일
- 2006.05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
목차
1. 머리말
2. 독일 민족주의 운동의 전개
(1) 18세기 프랑스와 독일
(2) 애국자와 민족의식
(3) 정치운동
(4) 정치적 개혁
(5) 해방전쟁
3.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주지하듯이 민족의식의 등장과 민족적 영역국가의 형성은 근대 유럽의 정치발전 과정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뒤이은 혁명전쟁의 산물이었으며, 동시에 유럽인들이 영역적 민족국가만이 새로운 시대에 견실한 정부를 성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인식에 따른 결과였다.
독일지역에 있어서 민족국가를 위한 열망은 프랑스혁명이후의 나폴레옹지배시기에 최초로 나타났다. 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나폴레옹의 독일침략이 시작되면서 이제까지 분열되었던 독일인들은 대불(對佛)항쟁을 통하여 처음으로 민족적 일체감에 눈을 뜨게 되었다. 동시에 독일의 지식인들은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민족 공동체 즉 민족국가라는 이념적 비전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2. 독일 민족주의 운동의 전개
(1) 18세기 프랑스와 독일
근대적인 민족의식은 18세기를 통해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던 국민주권의 이념으로부터 성장하였고, 1789년 혁명과 뒤이은 혁명전쟁 과정에서 나타났던 혁명정신에서, 그리고 자결 및 국민주권의 이념으로부터 창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통해 특히 프랑스 혁명정부는 국민에 관한 개념을 국민이란 개념을 내포한 시민단 개념으로 융화시켰다. 즉, 시민이란 지역, 계급 혹은 집단에 대한 충성을 초월하여 스스로 국가문제에 참여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그리고 구체제 하에서 전형적이었던 국가와 개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국가는 더 이상 왕조체제로 이해될 수 없었으며, 동시에 전통이나 기독교 신앙 및 관습 그리고 신민의 법률 수호자로서의 임무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오히려 국가란 본질적으로 신성한 기관이 아닌 도구였으며, 동시에 그것은 신민의 도구가 되어야 했다. 이러한 변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신민은 시민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시민개념이 창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민개념과 더불어 국민주권의 이념에 의해 새롭게 일깨워진 민족의식은 국민적 일체감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희영,『대구사학』51권,「나폴레옹 시대의 독일 민족주의 운동」,대구사학회, 1996
조성을 편역,『자유와 평등의 깃발아래』, 집현전, 1990
김장수, 『서양근대사』, 선학사, 2004
권형진, 『독일사』, 대한교과서(주), 1996
앙드레 모레아, 전영애 옮김, 『독일사』, 홍성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