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 사비시대의 귀족세력
- 최초 등록일
- 2006.10.13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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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웅진사비시대의 대성팔족과 제 귀족을 중심으로 변천 과정을 서술
목차
1. 들어가면서
2. 본론
① 한성시대
② 웅진(熊津)시대
③ 사비(泗沘)시대
3. 결론
본문내용
1. 들어가면서
왕조 국가는 기본적으로 왕권과 신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과 그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신하로 중심구조가 이루어진다. 신하로서는 관료가 될 수도 있고 유력한 귀족세력이나 토착세력 등이 있다. 고대의 삼국시대에도 이런 구조는 통한다. 삼국 각각이 왕과 신료들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관계를 잘 이용하여야만이 국가를 발전시키고 삼국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왕은 권력의 집중을 도모하여 신료조직을 잘 제어해 국가의 발전으로 그 능력을 트게 한다. 왕조 국가에서 가장 안정된 체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하여 그 밑의 조직을 잘 제어하여 안정 시키는 것이다. 내치의 안정을 바탕으로 하여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을 하고 문화의 찬란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울 수가 있다.
여기서는 백제의 웅진ㆍ사비시대의 왕과 귀족세력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백제는 대성팔족으로 대표되는 귀족세력이 강했던 국가로서 백제사의 전반부에 걸쳐 유유히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왕의 조력자로서 귀족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 반대세력으로도 그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끊임없이 백제의 왕은 귀족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그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 마치 그 둘의 사이는 부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애증의 관계는 백제가 망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게 된다.
2. 본론
① 한성시대
백제는 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대에 국가체제를 갖추고 국력을 신장시켜서 대외로 활발하게 확장을 해나갔다. 이 근초고왕대부터 아신왕(阿莘王,392-405)대에 까지 5대에 걸쳐서 진씨세력을 중심축으로 정치가 이루어졌다. 진씨 세력은 왕족과 왕비를 배출한 세력이다. 아신왕의 사후 전지왕이 즉위하여 자신의 지지세력이었던 해씨세력에게 많은 논공행상을 내린다. 진씨세력은 퇴조하고, 해씨세력이 두각을 나타내어 실질적인 정치운영의 권한의 교체가 이루어진다. 전지왕은 왜국에 인질로 있다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국내에 지지세력기반이 미약하였다. 그래서 전지왕은 해씨세력과 왕족 세력의 균형을 통하여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그런데 전지왕은 상좌평 여신에게 군사, 서정권까지 위임을 하였는데, 이것은 정치운영을 여신이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왕권이 미약하게 되고 귀족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참고 자료
노중국『백제정치사연구』서울,일조각1988
노중국「4-5세기 백제의 정치운영」『한국고대사논총』6,1994
노중국「사비시대 백제 지배 체제의 변천」『한우근박사 정년기념논총』지식산업사,1981
충청남도『백제의 역사』공주 : 충청남도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