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조선의 왕비.
- 최초 등록일
- 2006.10.02
- 최종 저작일
- 2004.06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의 왕비에 대한 조사와 왕비들 중에서도 지략가였고, 가장 널리 알려진
명성왕후에 대한 조사도 함꼐 하였습니다.
목차
1. 개요
2. 조선의 왕비
(1) 왕비가 되는 절차
(2) 왕비의 임무와 권한
(3) 왕비의 정치 참여
(4) 왕비의 생활공간
1) 후계자 임명
2) 수렴청정
3. 명성왕후
(1) 왕후 간택과 대원군
(2) 명성왕후의 궁중생활
(3) 대원군과의 갈등
(4) 명성왕후의 인품과 인상
(5) 을미사변
(6) 명성왕후의 사진 진위 논란
4. 조사를 마치고
5. 참고
본문내용
왕비가 되는 절차
조선시대에 왕비가 되려면 일단 간택의 절차를 거쳐야한다. 간택된 처자는 왕실에 마련해 둔 별궁으로 가서 가례를 올리기 전까지 장차 국모로서 갖추어야 할 사전 교육을 받게 된다. 그후 가례를 올리고 나면 종묘의 조상에게 고한 다음 중국 황제의 고명을 받고, 마지막으로 책봉 의식을 거행한 후에야 비로소 국모로서 대접을 받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왕비가 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지만, 이 방식이 조선 5백년간 일관되게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왕후 간택과 대원군
명성왕후 민씨는 1851년 9월 25일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정호(貞鎬)였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한 살 아래인 고종과 가례를 올려 왕비로 책봉되었다. 민씨가 왕비로 책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고아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민치록은 민씨가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 오씨는 그보다 더 일찍 하직했다. 대원군이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왕후의 자격은 자기의 권력 기반에 관여하거나 도전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절대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왕후 자신도 그럴 욕심이 없어야 하고, 그 배후에도 야심을 가진 가까운 일족이 없어야 했다. 외척 세도에 피해를 당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여기서 대상은 이 같은 자격 요건을 갖춘 뼈대 있는 양반가문의 규수로 좁혀졌다. 그는 민치록의 딸인 이 소녀가 왕후로서 부끄럽지 않은 용모와 예의 범절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총명함도 어느 대갓집 규수보다 못지 않다는 부인 민씨의 추천에 따라 왕비로 간택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