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나라, 일본
- 최초 등록일
- 2006.08.30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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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천황의 나라, 일본>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천황이 일본과 일본인에게 자리잡고 있는 인식에 대해서 서술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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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논리로 그 전쟁책임을 따지기 보다는 오히려 소위 ‘기쿠 터부’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되는 존재이다. 또한 그들은 패전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인들이 놀랄만한 결집력과 성실함으로 오늘날의 경제대국을 이룬 것의 근본적인 원인을 천황에 두고 싶어 한다. 결국 천황이 과거 침략전쟁의 최고책임자인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일본의 최후결전과 전후재건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한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초특급 전범인 히로히토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천황’으로서 마지막까지 살 수 있었던 일본이다. 여전히 아키히토 천황을 비롯한 황실에 대해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일본이다. 그 내면 속에서는 아직도 상징이 아닌 ‘현인신’으로 천황을 받아들이는 풍조가 남아있는 일본인 것이다.
1990년 11월 12일 아키히토 천황이 아버지 쇼와 천황의 뒤를 이어 제 125대 천황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그 즉위식조차 평탄하지 않았다. 천황이 국민의 대표인 총리보다 더 높은 곳에서 식순을 밞았다는 것이 ‘위헌’이라는 이의가 제기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이는 현 천황제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서거한 히로히토 천황 때보다는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권위와 존경심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천황인 아키히토는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황실의 대중화를 표방하며 과거와는 달리 그 권위와 혈통만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황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여전히 황실과 천황가족은 일본인들의 변함없는 애정과 존경을 받고 있다. 일반인이었던 마사코의 왕세자와의 결혼이나 오랜 결혼 생활 후 어렵게 얻은 공주 ‘아이코’의 출산이 일본 열도를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자 이러한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사건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또 다른 시각으로 천황제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담당한 노경희 작가는 홈페이지에 ‘<천황의 나라 일본>을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천황제에 의해 희생되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또한 그것은 히로히토 천황 때인 전쟁 당시만이 아닌 현대로도 이어지는 계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의미가 더욱 높다. 나는 작가가 기고한 내용 중 우리가 본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다음의 세 가지로 일본 천황제로 인해 벌어진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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