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광해군 역사적 재평가 논술
- 최초 등록일
- 2006.07.17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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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역사 속에서 연산군과 함께 폐위된 왕이자 폭군으로 그려져왔던 광해군을 재평가한 논술입니다. 광해군의 업적과 외교법,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토대로 광해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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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최근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분쟁을 보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 강자에 의해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조작될 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표기한 자료들이 근대 이전에는 거의 없다가 일본이 강대국으로 등장한 이후에 갑자기 많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믿어온 우리의 역사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서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광해군에 대한 평가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그가 폐위된 임금이자 폭군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에 대한 평가에 여러 가지 미심쩍은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살펴볼 점은 광해군이 수많은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단지 폭군임금으로만 불려진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사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을 안정시킨 업적이 매우 컸다. 당시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의 피해는 극심했다. 경작지가 1/3으로 감소하였고 신분제의 혼란, 많은 문화재가 소실, 약탈되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가 승하하고 세자이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다. 그는 왕위에 올라서도 전쟁 후 백성들의 힘들어진 삶을 개선하기 위해 토지대장과 호적을 정비하여 경제를 재건하고 성곽과 무기수리,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 국방강화에도 힘을 썼다. 그 외에도 전란 중에 타버린 궁궐을 창건해 왕실의 위엄을 살리기도 했다. 또 대동법을 실시하여 전쟁 후 폐허가 된 조선을 일으켜 세웠다. 이처럼 그의 업적들이 다른 임금들 못 지 않게 훌륭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지 폭군으로만 기록된 것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국제 정세에 발맞춘 현명한 판단이었다. 광해군의 재위기간 중 명나라는 임진왜란에 조선으로 자주 출병을 해서 국력이 상당히 쇠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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