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조경]창경궁, 종묘
- 최초 등록일
- 2006.06.27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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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아시아 조경사 창경궁 종묘 레포트
창경궁과 종묘에 관한 건축적 조경적 역사적 특징이 자세히 나와있음
건축조경쪽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목차
1. 주례고공기의 좌묘우사에 대해 아는 대로 쓰시오.
2. 사직단의 기능과 구성에 대해 쓰시오.
3. 사직단의 제단 주위의 처리에 대해 쓰시오.
4. 종묘의 식재가 궁궐과 다른 점을 쓰시오.
5. 종묘 정전의 박석은 화강암 표면을 거칠게 다듬고 주위에 잔디를 둘렀다. 이를 현대적 공간에 응용한 사례를 하나 들고 그것의 장점을 설명하시오.
6. 조선시대 장원서의 기능을 쓰시오.
7. 창경궁 통명전 옆 석지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시오.
8. 창경궁 옥천교의 제원(길이와 폭), 재료 및 구조에 대해 설명하시오.
9.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동물원으로 이용되었다가 후에 궁원으로 수복되었다. 전통 조경적 관점에서 각자의 견해를 기술하시오.
본문내용
1. 주례고공기의 좌묘우사에 대해 아는 대로 쓰시오.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 명시되어 있는 국도의 구성원리에는 전조후시( :궁궐을 중심으로 그 앞쪽에는 정치를 행하는 관청을 놓고 뒤쪽에는 시가지를 형성함), 좌묘우사( ;궁궐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는 왕실 조상의 사당인 종묘를 놓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배치함)가 있다. 또 궁궐의 구성원리로는 전조후침( ;궁궐은 앞쪽에 정치를 하는 장소인 조정을 두고 뒤쪽에 임금을 비롯한 왕실의 거처인 침전을 배치함)과 3문3조( ;궁궐은 전체를 3개의 독립된 구역으로 분할하여 각 구역을 울타리로 둘러막고 각 구역 사이에는 문을 두어 연결시킴)가 있다. 이와같은 제도적 규정이 한성의 도성 및 궁궐 계획에 사용되었다는데 이는 어겨서는 안 될 법칙이라기보다 이상적 규범으로서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경복궁성은 도성 한복판에 있지 않고 북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궁성 남쪽의 큰 길 좌우에는 의정부, 6조, 사헌부, 삼군부 등 주요관청을 배치 하였고, 그 남쪽 동서로 뚫린 큰 길(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길, 지금의 종로)에 시장을 열어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종묘와 사직을 각각 경복궁성의 왼쪽과 오른쪽에 놓았으나 등간격으로 대칭이 되도록 배치하지는 않았다. 또 도시 전체를 둘러싸는 외성을 평지에 장방형으로 쌓지 않고 한성분지를 외호하고 있는 백악산, 응봉, 인왕산, 타락산, 남산의 등성이에 산성형식으로 지형에 맞게 쌓았다. 결과적으로 한성의 지형과 풍수적 명당터를 더 존중하여 도성을 계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사직단의 기능과 구성에 대해 쓰시오.
-> *사직단의 기능
북악이 보이는 인왕산 아래에 사직단을 쌓고 매년 봄, 가을 그리고 동지 뒤 세 번째 무일인 납일에 왕이 친히 나가 친제를 드리던 곳이다(사는 토지의 신, 직은 곡식의 신을 뜻한다). 이렇게 사직단에서는 1년에 네 차례의 대사와 선농 ․ 선잠 ․ 우단을 제사지내는 중사, 또한 이러한 장기적인 제향 이외에도 나라에 큰 변란이 있을 때 이를 알리고 무사하기를 비는 기고제, 기도한 것이 이루어 졌을 때 드리는 보사제, 가뭄이 들었을 때 드리는 기우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 등이 있었다. 고종 때에는 사직단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는 고유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