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론]시의 역설
- 최초 등록일
- 2006.06.16
- 최종 저작일
- 2005.10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묘비명
김광균
한 줄의 시는커녕 /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 그는 한편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 높은 자리에 올라 /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균 묘비명
이 시에 등장하는 ª그º라는 주인공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화자는 그가 ª많은 돈을 벌었고/높은 자리에 올라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았고 또 죽어서는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생전에 "한 줄의 시는커녕/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는" 인물이다. 문화적 소양이나 감각이 전혀 없는 인물이 그라는 사실을 어렵잖게 읽어 낼 수 있다. 그러한 그가 차지한 많은돈과 높은 자리와 행복은 물론 가치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비석과 굉장한 묘비명을 남겼다 해도 오히려 그것은 경멸에 값하는 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진술하고 있다. 내색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시침떼기의 동의어인 것이다. 그리고 그로써 이 시가 주인공의 무가치한 삶과 또 그에게 유명한 문인이 묘비명까지 써 바치는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는 것은 구태여 두말할 나위가 없다. 표현에 드러난 겉뜻과 감추어진 속뜻이 그야말로 정반대로 되어 있는 아이러니의 시인 것이다. 이 시에 있어서는 화자와 주인공이 각각 에이론과 아라존의 역할을 맡고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모순"을 통한 진실 발견]
이러한 아이러니와 매우 유사한 표현법으로 역설이 있다. 역설, 즉 패러독스(paradox)는 희랍어 para(초월)와 doxa(의견)의 두 낱말이 모여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고대 희랍의 수사학은 이 역설을 아이러니와 함께 중요한 표현법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역설은 자주 아이러니와 혼동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이러니와 역설은 다 같이 "이것(A)"을 말하면서 실은 "이것"과 상반 모순되는 "저것(B)"을 드러내는 표현법이기 때문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산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듣는 역설의 한 보기이다. 여기서는 "삶"이라는 A가 "죽음"이라는 상반되는 B를 가리키고 있다. "날씬하다"는 말이 정반대의 개념인 "뚱보"를 가리키는 아이러니의 경우도 그 점에 있어서는 역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러니와 역설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론적으로 따지면 여러 가지 차이가 지적될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만을 기억하는 정도로 그치자. 그것은 아이러니가 진술 자체는 모순이 없는데 반해 역설은 진술 자체가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에 든 예를 다시 이용하면 뚱보를 날신하다고 한 아이러니의 그 "날씬하다"는 말 자체는 표면적으로 모순이 없다. 다만 숨겨진 속뜻과 상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역설은 표면적인 언어 구조부터가 모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갖는 아이러니와 역설도 일종의 모순 어법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모순을 통한 진실의 발견이 아이러니와 역설의 본질이라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진실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진실이 모순 속에 있고 또 모순성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가치 있는 인간은 그가 죽은 후에 참다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도 모순 속에 있는 진실의 일례이다. 인생 만사에 밝음과 더움의 양면이 있는 것도 모순성을 띠고 있는 진실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모순 속의 진실은 성숙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치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