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서학의 유입과 형성
- 최초 등록일
- 2006.06.16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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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조 후기 서학의 유입과 그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고 정약용의 과연 서학자인가 도 밝히고 있음.
목차
1. 천주교의 도입
2. 조선조 후기의 문화적 충격
3. 다산 정약용은 과연 서교주의자인가?
본문내용
① 천주교의 도입
임진왜란 초기인 1593년 12월 28일 예수회원인 세스페데스G. Cespedes가 대마도를 거쳐 경남 옹포에 발을 디딤으로써 처음으로 이 땅에 천주고의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런 조선에 천주교와 서양문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부경사행원들에 의해서 였다. 이때 조선에서 『천주실의』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이수광(李睟光)이다. 그는 『지봉유설』에서 천주실의 8편 가운데 제2편과 4편을 제외한 6편의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 읽어 보았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천주실의』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상적, 종교적 논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익(李瀷)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제자들인 성호학파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전개된 이른바 서교 논쟁은 조선의 유교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고, 급기야 조선후기의 역사를 신유박해로부터 시작되는 박해와 순교라는 극도의 긴장과 피로 속에 빠져들게 했다. 조선 후기의 서교사는 한 세기 동안이나 지속된 다산가(茶山家)의 순교사에서도 보듯이 중간 숙주 안에서 문화 기생으로 인해 전개되는 문화 변형의 비극적 드라마일 수 있다.
② 조선조 후기의 문화적 충격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서 명나라와 청나라로부터 각종의 한역 서역서와 서교서의 도입을 가리켜 어떤이는 조선 사회에 주어진 서구 충격(western impact)이자 문화 충격(culture impact)이라고 말한다. 1603년 진청사(陳請使)로서 북경에서 돌아온 이광정과 권희가 1602년 이지조의 제의와 도움으로 마테오 리치가 출판한 최초의 세계 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들여온 것이나 그 이듬해에 황중윤이 <양의현람도>를 들여온 것은 분명히 장차 조선인들의 세계관을 바꿔 놓을 만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