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출현하고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영화 <1492 콜럼버스>를 서양사 속 사회사 및 경제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영화의 비역사적 오류를 제시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영화 프로필과 줄거리
2. 영화 속 시대적 상황
(1) 대항해시대 이전, 유럽의 경제적 상황
(2) 이베리아 반도의 정치적 상황
(3) 점진적 기술의 발달
(4) 콜럼버스 이후의 사회변화
3. 영화의 오류
(1) 콜럼버스는 고독한 선각자였는가?
(2) 콜럼버스는 인도주의적 개척자였는가?
4. 영화 비평
본문내용
(3) 영화 제작의 배경
자신만의 지식과 용기, 모험심으로 미신과 허구의 세계를 관통한 콜럼버스는 여전히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웅’ 내지는 ‘선각자’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신대륙 당도 400주년을 기념하는 1892년의 기념식은 미국이 주도했다. 이 때 안토닌 드보르작은 “꿈속에 그려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지금은 향기도 높네” 라는 멜로디의 교향곡 <신세계>를 작곡했다. 그 후 콜럼버스는 미국인의 영웅이 되었고, 건국의 아버지 위에 있는 ‘건국의 할아버지’로서 자리매김했다. 바로 당시 미국이 성취한 ‘진보, 과학, 부, 권력, 문명’을 표상하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성, 진보, 모험심을 상징하는 구미 문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특히 1992년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당도 50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금 콜럼버스라는 인물에게 가치와 신화를 부여한 해이다. 미국에서는 성대한 축제를 벌였으며, 에스파냐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박람회를 통해 서구 문명의 확산에 기여한 500년 전 자신들의 공훈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세계적 ‘추모’의 열기에서 이 영화는 탄생하였다. 영화는 각기 다른 두 편이 제작되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의 《1492 콜럼버스》가 존 글렌 감독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발견》을 여러 면에서 압도했고 곧 리들리 스콧의 영화는 콜럼버스에 대한 신화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생애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인 면만을 보여 주었다는 관객들의 차가운 지적.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을 파괴한 장본인인 콜럼버스나 당시 유럽 체제의 가치관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1990년대는 탈냉전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찾는 듯 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적인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위기였다. 또한 이 때에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비서구국가들에 대해 정치․군사적 압박을 가하면서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을 꾀하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서구 문명의 우월함을 널리 알릴 기제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고, 미개한 야만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발달된 문명을 ‘전파’한 콜럼버스에 대해 재조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참고 자료
이재광/김진희, 『영화로 쓴 세계경제사』, 세상의 창, 1999
마크 C. 칸즈 외, 손세호 외 역,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소나무, 1998
차용구, 『로마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 푸른역사, 2003
안드레아스 벤츠케, 윤도중 역, 『콜럼버스』, 한길사, 1998
이성형,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까치글방, 2003
존 H. 엘리엇, 김원중 역, 『스페인 제국사 1469-1716』, 까치글방, 2000
김종현, 『경제사』, 경문사, 1987
이종호, 『세계를 속인 거짓말』, 뜨인돌, 2002
차하순, 『(새로 쓴) 서양사 총론』권2, 탐구당, 2000
네이버 백과사전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47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