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비평]연극 빨간 도깨비 를 보고나서,

소개

■서정성 안에 빛나는 철학적 사유 - 노다 히데키의 걸작 <빨간 도깨비>
<빨간 도깨비(赤鬼)>는 노다 히데끼의 <赤鬼(적귀)>를 한국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996년 일본 초연을 시작으로 태국, 영국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공연이 올려지는 나라의 배우들이 직접 출연함으로써 매번 다른 버전으로 그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까지 성공적으로 담아내왔다.
<빨간 도깨비(赤鬼)>는 해안가에 표류한 한 남자가 마을사람들로부터 ‘빨간 도깨비’로 몰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밝고 우화적인 분위기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 ‘재미’의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이 빚어내는 비극과 혼돈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주제가 담겨 있다. 보편적이며 철학적인 깊이가 탁월한 만큼 그저 좋다는 수식어로 모자란 그윽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바다 한 가운데 무인도에 있는 기분, 그 때의 공허한 기분.
따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엷은 베이지 색의 한지. 무성의하게 세워져 있는 긴 대나무 세 개, 그리고 조명이 들어있는 바닥의 작은 구멍 여러 개. 소극장으로 들어섰을 때 맞닥뜨린 <빨란 도깨비>의 무대장치의 모든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정말 힘들었겠구나.’하는 주제 넘는 걱정을 잠시 했다. 모든 도구적 장치들이 사라진 그 자리를 배우들의 동작만으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무대의 사방은 모두 관객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노출된다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선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 될지도 모르지만, 배우들의 입장에선 정말 난감한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넘어서 내 뒤통수에까지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는데, 그것은 배우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감 이었겠는가. 이 부담감은 ‘관객과의 대화’라는 시간에서 오용(톰비)씨도 적잖게 공감의 빛을 내비친 부분이다. ‘도구가 심플해지면 질수록 배우들은 그만큼 바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마냥 동작만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무대의 간결함에서 받은 나의 걱정은 여기까지 해 두고, 다시 객관적인 무대 장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면, 그렇다. ‘주제의식’ ‘내 안에만 갇혀, 타인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이해하지 않으려하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그런 느낌을 전달하는 데 사방이 관객석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마당놀이’ 극의 형태를 취한 이 무대는 아주 적절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극 속의 주인공들에겐 그들의 섬을 둘러싼 관객석은 그들 마음속의 벽과 막연한 이상향(그러나 쉽게 도달할 수 없는)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무대의 모티프는 노다히데키씨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한다. 일본의 가장 남부에 있는 오키나와라는 섬을 여행 중이었던 그는 그 곳의 사람이 타지 인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아웃사이더’라는 개념이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 그 중에서도 가장 먼 섬에까지도 존재한다는 점에 아주 놀랐다 한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표현하지만 그것은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아웃사이더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어떻게든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무대를 두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에 눈치 챌 겨를도 없이 극의 막이 올랐다. 회색 빛 누더기 옷을 걸친 세 남녀와, 그리고 빨간 도깨비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말이다.

참고자료

· 연출가 노다 히테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