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웅진, 사비 시대의 왕권과 귀족세력
- 최초 등록일
- 2006.03.05
- 최종 저작일
- 2009.04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웅진과 사비시대의 왕권과 귀족세력의 관계를 당시 시대상황과 결부시켜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였기에 좀더 깊이 있는 자료가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목차
<서론>
<본론>
1.웅진시대의 정세와 왕권
2.웅진시대의 귀족세력
(1)웅진천도와 해씨정권
(2)진씨세력
(3)연씨 세력의 대두
(4)백씨의 등장
1.사비시대
(1)성왕의 사비천도
(2)무왕의 왕권강화
2.사비천도와 귀족세력
본문내용
<서론>
백제 한성 전기시대에 지배체제를 정비해가면서 진씨 왕비족이 등장하고, 지방통치조직도 정비하며, 지배이념으로 불교를 공인하며, 정복사업을 추진한다. 그리고 한성시대 후기에 이르면 왕족과 진씨 왕비족 연합세력이 정치운영을 주도하게 된다. 뒤에는 왕위계승분쟁이 일어나고 귀족세력이 변화하게 되는데, 이에 해씨세력이 부상하게 된다. 사회의 혼란이 계속되면서 해씨와 목씨의 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백제 한성시기의 불안한 정국은 웅진천도의 배경이 된다. 국내외적 상황으로 2번의 천도를 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주도권을 잡는 귀족세력, 즉 지배집단으로서 영향력을 행사는 집단이 변화하게 된다. 웅진, 사비 시대의 귀족세력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그 시대의 백제를 이해하는데,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앞으로 웅진, 백제 시대 귀족세력의 동향과 이에 대한 왕권의 세력에 대해서 구체적인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1.웅진시대의 정세와 왕권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을 받은 백제는 한성을 버리고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로써 문주왕(475~477)이후 성왕 16년(538)까지 웅진은 백제의 도읍이 되었다.
웅진 천도가 급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웅진이 왕도로서의 변모를 미처 갖추지 못했지만,
이곳은 차령산맥과 금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여서 고구려의 추격에서 벗어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권이 실추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성에서 내려온 구귀족 사이의 분열과 금강 유역에 기반을 두고 중앙 정계에서 진출한 신진 세력의 성장으로 국내 정치는 매우 불안하였다. 대외적으로도 중국과 일본의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교섭이 단절되고, 대외 무역도 쇠퇴하여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에서 다시 부흥을 일으키지 위해 갖가지 시책을 한 왕이 바로 동성왕과 무령왕이다.
참고 자료
웅진시대 백제의 귀족세력
사비시대의 신진귀족
부여의 역사와 문화
백제정치사연구 국가형성과 지배체제의 변천을 중심으로 /노중국.1988
백제의 지배세력의 변천/노종국, 지식산업사1987
백제사 개론 / 이기동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