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화랑의 인식 경향에 대한 사료 고찰과 재해석
- 최초 등록일
- 2006.02.0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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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호국수호의 성격을 갖는 화랑도의 역사적 역할과 의의를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 등의 사료를 통해 살펴보고, 호국수호의 기능 외 시대별 화랑의 변천사와 화랑의 인식을 역사적 맥락을 통해 재해석을 시도한 글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신라 花郞徒의 기원과 화랑 제정 이전의 청년조직
1. 신라 화랑도의 기원
2. 花郞道=風流道의 의미와 기원 고찰
3. 화랑 제정 이전의 청년조직에서 花郞徒로 성격 변화
Ⅲ. 고려시대 사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화랑의 인식
1. 유교주의 사관의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 보이는 화랑 인식
2. 일연의 삼국유사에 보이는 화랑 인식
Ⅳ. 조선시기 화랑의 인식 변화
Ⅴ. 花郞世記에 나타나는 화랑의 모습
1. 金大問이 저술한 화랑세기와 필사본의 문제
2. 화랑세기에 저술된 화랑
Ⅵ. 진취적 기상의 화랑도가 형성된 연유
Ⅶ. 나가며
본문내용
Ⅶ. 나가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어느 역사서나 다 그렇듯이 편찬진의 의도와 당대의 인식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편찬자가 승려인 삼국유사는 전체가 불교적 색채가 강하고, 유교주의 사관이 강한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고려시대 중기의 시대정신이 여실히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삼국사기의 이데올로기 성향은 고려건국의 정당화 의도에 따른 구도적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열전에서 가장 앞쪽에 설정되어 있는 인물은 당연 화랑도 출신의 김유신이다. 그는 신라 왕실을 위해 충성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반면 한 예로 견훤과 궁예는 반역자로 몰아야만 고려의 건국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현명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여기에서 우뚝 솟아났고 좋은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여기에서 말미암아 생겨났다” 『三國史記』 新羅本紀
“第四 眞興王 三十七年…故金大問花郞世記曰,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
는 말을 김대문에게서 빌려 쓰며 화랑도의 인식을 이와 같은 성격으로 규정시키는데 정당화시킨 것이었다.
화랑에 대한 역사상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물론 花郞道의 인식체계는 사회 통합의 일정한 구실을 담당했던 측면에 대해서는 異論의 여지가 없지만, 가짜라고 볼 수도 없는 화랑세기가 연구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진정으로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끔 신라 화랑도가 순국무사도라는 고려 텍스트적 인식에서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본고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 그간 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배워왔던, 그리고 가르쳐왔던 花郞道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겠다는 의무감마저 들게 한다. 역사의 인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여겨왔던 필자로서 이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표출되는 화랑도와 필사본 화랑세기를 통해서 바라본 화랑도 인식과의 크나큰 괴리감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의 충격이자 신라 문화에 대한 충격이었다고 본다. 어쩌면 이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를 가져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참고 자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