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춤추는 죽음
- 최초 등록일
- 2006.01.08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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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 1, 2권의 서평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진중권이라는 글쓴이의 이름을 보며 책을 고르다가 “춤추는 죽음”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죽음은 움직이지 않는 이미지인데 춤을 춘다니 죽음이 춤을 춘다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참 오래도 붙들고 읽어왔다. 자극적인 것을 즐기지도 않고 오싹하자고 공포물을 보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오로지 저자가 진중권이기 때문이었고, 미학오디세이에서 느꼈듯이 이것이 진리인지 알 수 없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어딘가 명쾌하고 논리적이어 보이는 그의 글에 다시 한 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문체에 빠져있을 때 옆에 있던 친구가 ‘자극적인 그림’들을 찾아가며 책장을 넘기던 것이 기억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이해를 돕게 위한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글과 동등하게 이야기한다. 그림 없이 글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표제 그대로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죽음을 다룬 그림들을 다루고 있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만큼 끔찍한 묘사로 이루어진 그림도 많은데 막상 그림은 두려움이나 공포를 안겨주지 않는다. 이는 죽음이 그림 안에 들어있다는 자각 때문에 대상화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는 달리 어떤 시대에는 죽음이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중세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죽음이 사람에 의해 통제되기도 하고 반대로 죽음이 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죽음은 아직도 우리에게 필연적인 것이지만 ‘행복’과 마찬가지로 마음먹기에 따라 희망을 줄 수도 있고 두려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로 여길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죽음을 다루었어도 먼 옛날 중세의 죽음에 대한 그림보다 현대의 죽음에 대한 그림이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은 그림 속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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