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조경사]베르사유궁전
- 최초 등록일
- 2005.12.19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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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베르사유궁전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역사와 운명에 관한 글이다.
목차
A.카드로 지은 성
B.루이14세의 베르사유
C.국가에 귀속된 이후의 베르사유
본문내용
베르사유는 오랫동안 대표적인 ‘절대군주체제의 사적지’로서, 또한 오랜 전에 사라졌으나 여전히 매혹적인 한 사회체제의 가장 명증한 상징으로서, 그리고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인 루이 14세 시대의 생활과 통치형태가 구현되어있던 장소로서 크게 부각되어왔다. 당시 프랑스와 적대관계에 있던 프로이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1세는 루이14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분, 위대한 왕이 죽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의도적으로 말한거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 추모사에는, 절대왕권을 신성한 의상으로 감싸 한순간에도 그것을 벗지 않았던 한 인간의 운명과 성격이 잘 요약되어 있다. 이 장엄하고도 놀라운 대군주의 의상, 이것이 베르사유이다.
루이14세는 왕국 내의 힘있는 세력을 그의 주변으로 끌어모아 엄청난 규모의 궁전으로 결집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궁전의 주변에 잘 정돈된 대규모의 정원, 드넓은 사냥터, 국사를 처리하기 위한 여러 건물, 그리고 왕을 중심으로 존재하던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수용할 목적으로 지어진 크고 작은 부속건물, 도시 전체가 마치 많은 궁정 사람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확장하고 증축한 듯 보인다. 이렇게 행성들의 공전체계와도 흡사한 독자적인 하나의 우주, 이것이 또한 베르사유이다.
이 역사적 명소는 지금까지도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있다. 주변에는 잘 구획된 도시가 있고, 맞은편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가 울창한 작은 언덕이 보인다. 그 언덕 위에서는 ‘갈리’라는 작은 하천을 끼고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한때 파괴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으나,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한 위용과 그것이 지닌 상징적 가치로 이를 모면할 수 있었다. 왕실이 철수한 이후에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이처럼 혁명의 소용돌이 중에서도 아무런 손상 없이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여 여러 방과 정원은 물론 주변 모든 환경까지도 국가의 중요한 문화재로 안정 받기에 이른다. 이렇게 온전히 남아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 이것이 베르사유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