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사]조선시대 노비
- 최초 등록일
- 2005.12.19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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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노비에 대한 강의자료입니다.
레포트를 쓰거나 시험대비를 위해 유용할 것입니다.
조선사 전공 교수님 수업을 토대로 만든 것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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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사회에 있어서 노비문제는 서얼문제와 상당히 맞물려 있다. 17세기를 기준으로 하여 전 인구의 약 50% 정도를 차지하는 노비 문제를 제외한다면 조선사회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비문제는 조선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양반관료체제의 기반은 노비이며, 노비를 해명했을 때에만 양반관료제에 대한 해명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노비는 전근대사회에 있어서 재산적 가치로서의 기능은 물론 사회 운영의 기반으로서도 기능하였다.
고려, 조선을 포함한 우리나라 노비제도의 몇 가지 특징 중 하나는 세전법, 양천교혼, 신공으로 나눌 수 있다. 1)먼저 세전법은 고려 정종 5년 나타난 천자수모법에서 부터 출발한다. 천자수모법이란 천인은 어머니 신분을 따른다는 것으로 일종의 종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세전법에는 약간의 수정이 있어왔지만 대체로 한말까지 이어져간다. 이런 식의 종모법을 따를 경우, 奴와 良女사이에 나온 자식은 당연히 양인이 되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따로 아버지 신분을 따라 천인이 되었다. 즉 ‘일천즉천‘인 것이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천인일 경우 그 자식은 천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천인의 신분은 대대손손 이어져갔다. 이러한 세전법은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2)양천교혼이란 양민과 천인이 혼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민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상승시키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왕 중에서도 비첩의 소생이 꽤 있었다. 대표적인 왕은 영조이다. 왕의 비첩의 소생으로서 명문거족으로 성장한 후에 이들이 자신들의 가계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비첩 소생 중에서도 명문가가 있었다. 또 비첩과 양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중 경우에 따라서는 노비가 되지 않고 서얼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3)그리고 노비는 노동력만 마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 필요 없을 경우 자신들의 몸값에 따라 신공을 바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현급으로 양반집의 각종 경상비에 이용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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