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여러 자료를 통해 이두와 향찰을 비교하였다(자료첨부)
목차
◎ 이두
◎ 향찰
◎심화-이두와 향찰의 차이
*참고문헌 및 인터넷사이트
본문내용
◎ 이두
①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서기체 표기에 조사와 어미를 차자 표기하는 이두(吏讀)는 대략 7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이는 남산신성비와 화엄경사경조성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산신성비는 지금까지 모두 9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제1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辛亥年二月二十六日南山新城作節如法以作後三年
2 崩破者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
신해년 2월 26일 남산신성에 법대로 지은 후 3년 안에 붕괴하면 죄주실 일로 삼아 듣게 하시고 이것을 맹세하게 하니라.
초기 이두 문서인 남산신성비에는 `節(時, 만들 때 또는 만듦에 있어), 以(로), 敎(令 또는 使, 주실), 爲(삼아), 令(하시고), 之(라)` 등의 이두 표기가 훈독되어 있다. 이를 통해 초기의 이두는 음독되지 않고 훈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두 문자의 규정이 확실지 않아 해독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이두는 관청에 소속된 이서(吏胥) 또는 서리(書吏)가 행정 문서에 사용했음을 의미하여 이서(吏書) 또는 이문(吏文), 이찰(吏札)이라 했고, 중국 문자에 대한 비칭(卑稱)으로 이문(俚文)이라고도 했다. 이외에 이도(吏道), 이토(吏吐), 이투(吏套)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두문에 사용된 이두 토(吐)를 의미한다.
② 화엄경사경조성기(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
후기 이두 문서인 8세기경의 화엄경사경조성기는 신라 시대의 이두 기록 가운데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로서, 한자의 음을 차자한 자로, 향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內(), 賜(시), 彌(며), 乎(-오-)` 등도 사용되었다.
"天寶十三載甲年八月一日初乙未載二月十四日一部周了成在之成內願旨者黃龍寺綠起法師爲內賜第一恩賜父願爲內彌第二法界一계切衆生皆成佛道 欲爲以成賜乎"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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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ugyo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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