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한반도 전쟁 위기의 사건과 그 이면
- 최초 등록일
- 2005.11.30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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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의있게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아무쪼록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각 사건의 이해
2. 사건들의 이면
Ⅲ. 결 론
- 앞으로의 과제 (비판과 반성)
본문내용
① 1968년 푸에블로호사건
1968년 1월 23일 오후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公海上)에서 승무원 83명(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을 태운 미 해군 최신예 전자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해군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납치된 사건.(북한 측의 위협사격→ 1명 사망, 수 명 부상)
미국정부는 북한의 무모한 도발행위를 비난하고 푸에블로호 및 그 승무원의 즉각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일전(一戰)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 핵추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號)와 제7함대의 구축함 2척을 출동시켰다.
또한 미국은 즉시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그 대응책을 강구하는 한편 판문점에서 군사정전위원회 소집을 요구, 북한에 대해 푸에블로호 나포(拿捕)의 부당성을 항의하였다. 그 후 북한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학대`고문하여 그들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였음을 시인`사과하도록 강요하였다. 사건발생 후 11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승무원 82명과 유해 1구를 송환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으나 북한은 푸에블로호 함정과 거기에 설치된 비밀전자장치는 몰수하였다. 미국은 승무원이 모두 무사히 귀환하자, 다시 성명을 내어 북한 영해를 침범한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사과발언을 번복했다.
②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1976년 8월18일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UN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다. 8월 18일 상오 10시 45분 경 미군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다.
당시 UN군 측인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북한군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약 12m에 이르는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여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고, 북한군에 의한 미군의 납치를 우려하여 이 날 가지치기 작업을 수행한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