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메이지유신
- 최초 등록일
- 2005.11.26
- 최종 저작일
- 2005.1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인 배경 및 메이지유신의 의의에 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차
Ⅰ.메이지유신의 배경
ⅰ.무력에 의한 개항
ⅱ.현신의 인식을 바탕으로 극복의 방안 모색
Ⅱ.봉건제의 폐지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ⅰ.도막파의 활동
ⅱ.관제의 개편
Ⅲ.천황체제 강화를 위한 노력
ⅰ.일본 역사에서의 천황의 위치
ⅱ.메이지 유신에서의 천황
Ⅳ.메이지 유신의 국가적 목표
Ⅴ.메이지 헌법 제정과 천황제 국가체제의 완성
Ⅵ.메이지 체제의 결함-2원적 체제
맺음
본문내용
1. 봉건제의 폐지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가. 도막파 : 교토 조정을 장악, 에도 막부에 대항
(1) 사이고의 지휘 하에 5번 연합군이 궁중을 포위 - 왕정복고의 대호령을 반포
(2) 5번 : 사쯔마, 토사, 에치젠, 오와리, 아키
(3) 왕정복고를 바탕으로 ‘위에서부터의 혁명’인 메이지 유신을 추진
나. 관제의 개편
(1) 도쿠가와 요시노부(쇼군)의 관위 사직, 영지를 몰수함.
(2) 무쯔히토 천황 즉위(1868년 9월 8일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결정)
(가) 5개조 정치방침(“5個條 御誓文”)을 신전에서 서약(1868년 3월)
- 의회 및 공론의 존중, 양이의 부정, 開國進取의 이상 등을 명시
(나) 정체서 발표
⇒ 국정의 전권을 태정관에 집중, 3권 분립제의 모방(행정, 의정, 형법)
모든 관직의 겸직 금지, 3등관 이상의 관리임명은 호선투표로 결정
(3) 중앙집권제의 걸림돌인 다이묘 지배를 개혁
(가) 번주의 지위를 폐하고 중앙 파견 관리 형식의 ‘지번사’로 임명.
이후 지번사를 소집하여 藩을 폐하고 지번사를 해임하는 詔勅을 내려 전국을
3府 72縣로 나누고 다시 府知事와 縣令을 임명(廢藩置縣, 1871년 7월 14일)
중앙이 임명하는 지방관에 의해 전국 획일적인 행정체제가 확립.
(가) 중앙 관제의 개편 - 신기관(신사 관장)과 태정관(정무 담당)의 양분
1) 이후 신기관의 폐지(제정일치 천황제의 부정)
2) 태정관은 정원, 좌원, 우원 분할
- 정원 : 대신, 납언, 참의
좌원 : 법령심의기관
우원 : 각 성의 장관 및 차관의 합의체
3) 참의의 실권 장악 → 좌우원의 폐지
※ 토막파의 중앙 및 지방 요직 독점
(1) 신분제도의 개혁
(가) 4민 평등(1871년 8월) - 황족, 화족, 사족, 평민
1) 신분간 혼인 허락, 평민에게 성과 이름을 부여
2) 의복, 직업, 거주의 제한을 폐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