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중세]<중국 유일의 여제(女帝) 측천무후(則天武后)>
- 최초 등록일
- 2005.10.30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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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측천무후에 대한 관련 서적과 인터넷 자료를 모아 재구성한 자료입니다.
측천무후의 황후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그녀의 정치, 후대 그녀의 재평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 많은 참고 바랍니다.
목차
1.개 관
2.황후가 되기까지의 과정
3.최초의 여자황제
4.측천무후의 정책
5.측천무후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황후가 되기까지의 과정◀
측천무후, 즉 무측천(武則天)은 중국 당(唐)나라 제 3대 왕 고종(高宗)의 황후로, 성은 무(武) 본명은 조(照)이다. 피폐해져 가는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 고조 이연
이 당나라를 건국하게 되면서 정치를 이끌어 가는 격변의 시기에, 무측천은 624년 1월 23일 수도 장안(長安)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무사확은 본래 목재상으로, 수말기에 당고조 이연을 좇아 봉기하여 군수물자 담당으로 커다란 공을 세우며 당 의 건국에 참여했다. 이로써 그는 14명의 개국공신 행렬에 들어가 당 왕조의 신흥 귀족이 되었다. 620년 무측천의 아버지는 본처가 병으로 사망하자 수왕조 때의 권 세가 양달(楊達)의 딸과 재혼하여 그들은 세 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두 번째 딸 이 바로 무측천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담이 컸는데 일찍이 무측천의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무측천은 13~14세 때 이미 많은 서적을 박람하여 견식을 넓히고 시사(詩詞)의 기초를 닦았을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녀는 성장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져 그의 빼어난 미모는 마침내 궁중에까지 소문이 퍼져 급기야는 태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636년 태종 이세민의 황후 장손씨(長孫氏)가 병사한 후, 그 이듬해에 태종은 무측천의 용모가 출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황궁으로 불러 재인(才人)으로 삼았다. 재인이라 함은 반쯤은 시녀이고, 반쯤은 실제적인 명분이 없는 황궁의 희첩(姬妾)이었다. 이때 그녀는 겨우 14세의 어린 나이였다. 정관의 마지막 해(649) 태종의 병이 날로 더해 가던 어느 날 황태자 이치는 태종이 와병중인 취미궁(翠微宮)에 문안가게 되면서 그녀와 만나게 되는데, 궁녀는 후의 측천무후로서, 당시는 미랑이라 불리는 낮은 신분의 궁녀였으나 뛰어난 미모로 태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고 또한 태종의 병 문안을 든 황태자 이치의 마음마저 사로잡아 버렸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여황 측천무후 (상)」: 샨사 지음/ 현대문학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조관희 지음 / 청아출판사
-「중국사개설」: 마쯔마루 미찌오 外 저 / 한울 아카데미
-「중국중세사」: 미야자키 이치사다 저 / 신서원
-「인물로보는중국역사」: 富士正晴 外 지음 / 신원문화사
-「이야기 중국사」: 김희영 편저 / 청아출판사
-「재미있는중국사여행」: 강영수 편저 / 예문당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 레이 황 지음 /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