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부정선거] 3.15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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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등록일
2005.06.21
최종 저작일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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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3.15부정선거

2.나의생각

본문내용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 부정과 폭력으로써 재집권을 시도하다가 4․19 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야기한 사건이다. 자유당정권은 독재정치․정경유착․무력통일정책 등에 의해 집권 내내 국민의 능동적 지지를 얻지 못한 정권이었다. 단지 불법적인 헌법개정과 부정한 선거방식 등으로 국민의 위장된 동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자유당정권은 이미 1952년 발췌개헌, 1954년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1인 장기집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자유당조직, 경찰 및 관료조직, 반공단체 등을 동원한 이른바ꡐ준봉선거ꡑ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정치조작도 거듭된 실정에 의해 국민의 지지를 거의 상실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1960년 선거에 승리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자유당정권은 당시 84세인 이승만 대통령의 유고 시, 그 계승권이 있는 부통령에 자유당의 제2인자인 이기붕을 무조건 당선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3월 15일 선거에서 대통령 이승만은 12년 간 지속된 장기집권체제를 연장하고,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전국적으로 유령유권자 조작, 4할 사전투표, 입후보 등록의 폭력적 방해, 관권 총동원에 의한 유권자 협박, 야당인사의 살상, 투표권 강탈,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등이 자행되었다. 자유당은 내무부장관 최인규의 지휘 아래 1년여에 걸쳐 치밀하게 부정 선거를 준비했다. 전국 경찰의 주요 간부는 모두 맹목적 충성 인물로 교체되었고, 야당의원들에 대해 집요한 분열 공작이 펼쳐졌으며, 정치깡패 등을 동원해 야당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일반공무원은 물론 교육 공무원들까지 부정선거 운동에 투입되어, 자유당에 투표할 것을 설득 권유하는 담임교사의 가정방문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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