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변, 인물성동이론
- 최초 등록일
- 2005.05.3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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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퇴계와 고봉의 사칠 논변
-논쟁의 쟁점이 되는 문제점들
①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
②사단과 칠정의 선악에 대한 문제
③사단칠정과 이기의 관계에 대한 문제
④리와 기의 발현에 관한 문제
⑤결론
2.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호락논쟁의 초점
(1)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
(2)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
(3)결론
본문내용
사단 칠정 논변의 전개는 이황의 나이 53세 때(1553년, 명종 8년) 정지운이 [천명도설]을 지어서 이황에게 교정을 부탁하자, 이황은 정지운의 “사단은 리에서 발동하는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동하는 것이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을 이황이 “사단은 리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이다(사단리지발, 칠정기지발)” 로 고친다. 그런데 뜻밖에도 ‘리와 기가 서로 단독으로 발동하여 정이 된다’ 는 이 열 글자의 설명이, 당시 학자들의 반론을 불러 일으켰으며 기대승은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대표하여 이황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논쟁을 시작했다. 기대승의 비판을 전해들은 이황은 ‘천명신도’가 작성된 지 6년 뒤에 기대승에게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 서한을 보내었고 이 문제는 이 후 8년 동안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들의 논쟁은 왕복 서한을 통해서 전개되었으며, 논쟁 속에서 이황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입장을 굳게 고수하고 있기도 한다. 그들의 이런 편지를 통한 논쟁은 후에 학자들이 두 사람의 왕복 편지를 모아 [사단 칠정 리기 왕복서]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8년 동안 오래 논쟁이 계속되었던 것은 이 문제가 갖는 복잡성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두 사람의 논쟁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참고 자료
조선의 유학 - 다카하시 도오루
유학사상 -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교재편찬위원회
한국의 유학사상 - 황의동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