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사] 중국바둑사의 문제
- 최초 등록일
- 2005.03.02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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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중국위기사의 제문제
(1) 바둑의 창시전설에 관한 한 가지 고찰
1. 문제의 소재
2. 요의 바둑 창시전설과 그 성립시기
3. 요의 바둑창제전설 성립 배경
4. 요의 바둑창시전설에 입각한 바둑론의 전개
(2) 바둑의 어의의 변천
1. 문제의 소재
2. 선진(先秦)시대의 용례(用例)
3. 진한(秦漢) 시대의 用例
1) 기(棊)를 바둑돌로 표기한 文例
2) 위기(圍棊)이라는 용어의 성립
3) 기(棊)를 바둑(圍棊) 그 자체로 하는 用例
4) 바둑(圍棊)을 병법, 전투 등에 빗댄 용례
5) 혁(弈)의 용례(用例)
4. 삼국(三國)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용례
5. 수·당·송·원대(隋唐宋元代)의 용례(用例)
6 명청(明淸)시대의 용례(用例)
7. 중화민국 이후의 용례
8. 棊, 棋, 碁(기,기,기)의 연관
9. 혁(弈)과 혁(奕)의 문제
10. 결어
본문내용
중국에서는 옛날 바둑이 태고적 성제(聖帝)인 요(堯)에 의해 창시되었다는 전승(傳承)이 신봉되어, 그것을 바탕으로 바둑론이 구축되었다. 근대사학(史學)의 도입에 따라 요의 창시전설은 단순한 전승에 지나지 않게 됐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바둑사 연구가 활발해지기는 했더라도 요의 창시전설에 대체할 바둑기원설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근년 고대의 출토품에서 바둑에 관한 문물이 발굴되어 고고학 분야에서는 고대에서의 바둑의 존재가 실증되고 있다.
한편 구미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지적 게임으로서의 바둑의 존재가 알려졌다. Encyclopedia Britanica에서는 1910년판에 바둑의 기원을 B.C.2350년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1970년판 이후에서는 B.C.2356년으로 하고 있다.
바둑의 기원에 관한 연구로서는 소화 7~8년(1932~33년) 오가와 다쿠지(小川琢治) 박사가 『중국에 있어서 바둑의 기원과 그 발달』 「支那に於ける囲碁の起源と發達」, 小山琢治, 「支那学」, 第六卷第三号, 昭和七年七月 第七卷第一号, 弘文堂.
이라는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였고 전후에는 고마쓰(小松田良平) , 우칭위엔 , 야스나가(安永一) , 마스카와(增川宏一) 등이 바둑의 기원에 관한 소견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 중 고마쓰의 논문에서는 바둑의 기원을 고대 제왕의 집무실인 명당에 두었고, 우칭위엔은 천문연구의 도구로 보았으며, 야스나가 설은 고대의 셈틀(算盤)로 보는 등 여러 설이 분분하여 정설이 없고 각각의 설을 직접 증빙할 문헌이나 자료도 없다. 이처럼 여러 책에 보이는 바둑의 기원에 관한 기사는 신화와 사실(史實)을 분명히 구별하지 않고 ‘4천년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Encyclopedia Britannica에 있는 B.C.2356년의 기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이를 거론하여 논평한 것이 별로 없다.
바둑의 기원에 관한 근본자료가 극히 적어 앞으로의 중국 고고학의 성과를 기다려야 할일이겠지만, 아무튼 바둑 창시전설은 피해갈 수는 없는 과제이다. 이 항목은 고대의 바둑창시설 중에서 요의 창시설에 대한 나의 소견을 정리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