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화폐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5.01.30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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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 이전까지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었던 화폐의 종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논문의 형식을 갖출 정도로 자세하진 않지만 일반 교양 과목 수준의 지식은 총망라하여 깔끔하게 정리하였으니 관련 레포트를 작성하실 분에게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1. 삼국시대 이전
2. 삼국시대
3. 고려시대
(1) 철전의 등장
(2) 은화의 발행
(3) 동화의 유통
4. 조선시대
(1) 저화
(2) 조선통보
① 세종 때의 조선통보
② 인조 때의 조선통보
(3) 십전통보
① 당일전(當一錢)
② 당이전(當二錢)
(5) 당백전(當百錢)
(6) 당오전(當五錢)
본문내용
1. 삼국시대 이전
이 시기는 기초적인 농경 생활을 중심으로 자급자족 경제가 이루어진 시기로, 주로 물물교환이 성행하는 가운데 금속을 소재로 한 화폐 내지 물품화폐가 유통되었다. 물품화폐는 조개, 건어류, 곡식, 직물 등 교환이 용이하고 널리 사용되는 물품이 그 대상이었다. 그 후 철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화폐로써 금속의 이용이 늘어났다. 금속은 쉽게 상하거나 훼손되지 않는 장점이 있어 그 후에도 계속 화폐 제조의 원료로 이용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곡물과 포(布)가 물품화폐로 널리 쓰였으며, 고조선 시대에 이미 자모전을 사용했고 동옥저에서 금,은 무문전이 사용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인된 유물은 없다. 이 때에 발견되는 유물은 모두 중국의 화폐로, 평양 주변의 낙랑고분, 은율군 운성리, 황주군 선봉리 1호분 및 흑교리 등의 널무덤, 창원의 성산(成山) 조개더미 등에서 발견되는 오수전(五銖錢), 청천강(淸川江) 이북의 위원군(渭原郡), 용연동(龍淵洞) 유적(遺蹟)과 평양 정백동(貞栢洞)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명도전, 경남 사천시 늑도패총에서 발굴된 반량전(半衿錢)이 유적의 연대결정에 중요한 자료가 될 뿐이다.
2. 삼국시대
국가가 정비되고 시장이 생겨나면서 물품 화폐의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490년(신라 소지왕2)에 경주에 상설시장인 경시(京市)가 처음으로 개설되었으며 지방에도 향시(鄕市)가 생겨났다. 신라는 이를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동시전(東市典), 서시전(西市典), 남시전(南市典) 등을 두어 도량형의 사용과 시장에서 발생하는 분쟁·범죄 행위 등을 단속하고 시장세(市場稅)를 징수하였다. 백제는 세금을 포(布), 견(絹), 삼실[絲麻], 쌀로 받아들였는데 이때 포와 견의 가치가 삼실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철, 쌀, 베, 모시 등 금속물, 농산품, 특산물이 교환 수단으로서 화폐의 역할을 하는 이러한 경향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물품화폐 이외에도 '신라국전 무문(新羅國錢 無文)' 등 몇몇의 기록 등으로 미루어보아 금은을 재료로 무문전(無紋錢)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발견된 유물은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