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공자의 교육사상
- 최초 등록일
- 2005.01.11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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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 사상의 중심 `공자`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레포트
공자를 중심으로 사상, 인물,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음
목차
1. 제자백가와 유가
2. 君子敎育論
3. 정명사상과 일이관지의 논리
4. 禮와 樂과 詩의 敎育
본문내용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산동성에 위치한 제(齊) 나라의 수도였던 임치(臨淄)라는 도시에 “직하”(稷下)라고 불리는 학술기구가 있었다. 직성(稷城)의 아래에 수도의 서쪽 문이 있는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직하” 혹은 “직하문”이라고 불려졌고, 그 곳은 학자들이 모여서 학문을 함께 논하는 곳이어서 일종의 학술기구이기도 하고 후진을 양성하였기 때문에 일종의 학교이기도 한 곳이었다. 이 기구는 기원 전 318년에 제 나라의 선왕(宣王)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곳에 거주하는 학자들은 모두 대부(大夫)의 서열을 받아 임명되고 왕실에서 제공한 높은 대문의 큰 집에서 살면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거기에는 70여명의 대부들과 1천여명의 학사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대단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 유래로 말하면, 제 나라가 태공(太公) 때부터 어업과 염전을 개발하고 후에 철의 생산까지 발전시키면서 상공업을 진작시켰고 후에 관중(管仲)은 어업과 염전업에 세금을 부과하여 형성한 재정으로 학술을 장려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위왕(威王), 선왕(宣王), 양왕(襄王) 등 후대의 왕들도 그 뒤를 이어 임치를 학술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맹자(孟子), 추연( ), 신도(愼到), 윤문(尹文), 순자(荀子), 묵자(墨子) 등을 포함하여 유가, 도가, 명가, 법가, 음양가 등의 학자들이 직하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저작을 통하여 통치술을 논하였고, 평시의 국정을 토론하였으며,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주어져 있었다.
참고 자료
중국철학사 -풍우란
한국문학통사 조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