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벨테브레-하멜표류기
- 최초 등록일
- 2005.01.11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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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박연과 하멜과의 첫 만남
1) 첫 만남의 모습과 정착과정
2) 하멜이 서술한 장면과 문헌 기록과의 차이
2. 박연의 한국 생활
1) 훈련도감
3. 박연과 하멜 이전에 조선을 찾았던 서양인
1) 빙리이
2) 포르투갈 신부
3) 박연(벨테브레)
4) 조선의 기록들
4. 조선인이 외국에 표류했던 기록
본문내용
1) 첫 만남의 모습과 정착과정
10월 29일 오후, 서기와 일등 항해사와 하급선의가 총독에게 불려 갔습니다. 관청에 도착한 우리는 길고 QKfrks 수염이 난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총독이 우리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 알겠는가?”하고 묻기에 우리와 같은 화란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총독은 웃으면서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코레안스(Coreaanse)또는 코레아넨(Coreanen)과 같은 뜻으로 TM인 이 표기법은 하멜일지에만 나타난다. 당시는 코레아(Corea)에 대한 표기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고 있었다. 코레아가 고려에서 온 것은 틀림없다. 고려의 일본 발음인 ‘코오라이’를 포르투갈인이 Couray라 표기한 귀부터 이 발음이 유럽각지로 전파되면서 Coeree(화란어), Corea(영어) Corée(불어)로 변하고, 다시 대한제국의 등장과 함께 Korea로 바뀌게 된다.
코레시안(Coresian)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말과 몸짓을 서로 주고 받은 뒤에,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그 사나이가 몹시 서툰 화란어로 우리가 어느나라 사람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 화란 데레프 출신의 벨테프레는 하멜보다 26년 전 이 땅에 표류하여 정착한 사람이었다. 1626년 네덜란드에서 홀란디아(Hollandia) 호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였고, 1627년 더 아우버께르크(De Ouwerkerk:구교회라는뜻)호를 타고 야빤(일본)으로 가던 중 역풍을 맞아 조선 해안으로 밀려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