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의 도시 문화와 우키요에(히로시게의 작품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04.12.19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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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기
2.에도의 도시문화와 우키요에
2.1 에도의 대표적 도시문화 - 유곽과 가부키
2.2 우키요에
2.3 19세기의 다색판화
3.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그의 작품
3.1 우타가와 히로시게
3.2 히로시게의 작품
4.나가기.
본문내용
1603년 도쿠가와 쇼군의 대본영(大本營)으로서의 에도 형성은 일본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제 1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를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로 선택했을 때만 해도 에도의 규모는 성을 둘러싼 요새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18세기가 시작될 무렵 과거의 낙후 지역이었던 이곳은 백만 인구의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으며, 전통적으로 천황의 거주지이자 문화적인 심장부였던 교토와 경쟁하는 단계에 이른다.
에도 시대 일본 전역은 ‘팍스 도쿠가와(Pax Tokugawa)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시작된 전국 통일의 과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러 완성된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일본 전국에 대해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한 시기는 오사카성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추종자를 제거한 1615년부터였다. 도쿠가와 쇼군과 그의 후계자들이 확립한 바쿠후 통치 제도는 1868년까지 지속되며, 총 15대의 쇼군이 등장했다.
’로 인해 어느 때보다 평화와 안정을 구가한다. 도쿠가와 쇼군들은 자신들의 지배 정당성을 주장하고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많은 수단들을 고안해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사무라이를 정점으로 그 아래 농민, 직인, 상인을 두는 공식적인 계급 제도의 확립이다. 이 제도 안에서 상인은 사회에 대해 어떤 가치 있는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으나 조닌이라 불리는 이들은 에도의 도시 생명력의 근원이었다. 에도 시대의 도시 성장은 부유한 조닌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에도라는 도시는 막대한 부의 축적과 함께 다양하고 독창적인 도시 문화를 꽃피우게 된다.
에도는 18세기 중엽 다색 목판화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하여 괄목할만한 문화의 자율성을 갖추게 되며 문화적인 면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던 교토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에도의 문화를 이루어 낸다. 판화가 에도에서 생산된 유일한 미술 형태는 아니었으나 역시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판화였다. 계절에 따른 에도 명소의 매력과 유녀(游女), 가부키 배우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한 판화는 일반적으로 ‘우키요에(浮世繪)’로 알려졌으며 에도 미술의 뚜렷한 특징이 되었다.
우키요에에는 도시민들의 정서와 관심사가 잘 드러나 있다. 역동적인 에도의 도시문화와 관련하여 우키요에를 살펴보고, 특히 풍경을 소재로 한 목판화로 대중의 인기를 끈 히로시게의 작품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본다.
참고 자료
1. 크리스틴 구스, 에도 시대의 일본 미술, 예경, 2004
2. 안혜정, (내가 만난) 일본 미술 이야기, 아트 북스, 2003.
3. 쓰지 노부오, 일본 미술 이해의 길잡이, 시공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