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왕건의 후삼국통일의 의의와 고려사회 의 성격
- 최초 등록일
- 2004.10.05
- 최종 저작일
-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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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후삼국의 성립
3. 고려의 성립과 후삼국통일의 의의
4. 고려사회의 성격
본문내용
1. 머리말
676년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비록 외형상은 불완전했다고 할 수 있지만, 통일 신라 사회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한편 고구려를 이은 발해는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기반으로 신라와 남북국 시대를 열어가며, 두 나라는 상호 대립과 교류를 통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갔다.
그러나 신라의 번영과 안정은 8세기 말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으며 무너지게 되었다. 宣德王(780~785)으로부터 시작된 下代는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고, 중앙의 이러한 혼란은 지방의 통제의 약화를 가져와 지방관의 이탈과 농민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더군다나 골품제의 엄격한 영향을 받던 6두품 계열의 인물들이 반발하는 등, 신라의 사회질서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러한 신라 안에서 등장한 지방 세력을 豪族이라고 부르고, 그 대표적인 세력이었던 후백제의 견훤과 태봉의 궁예로서, 결국 후삼국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 혼란을 수습․통일해서 새로운 통일을 건설한 것이 바로 왕건의 고려였다.
그렇다면 왕건의 고려의 건국과 한반도의 재통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역사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왕조 교체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고려는 삼국과 조선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에 불과한 것인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 유민들을 포섭한 것은 어떤 의미이며, 사회적인 변화는 어떤 의미를 지는 것인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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