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 로마 공화정과 신분투쟁
- 최초 등록일
- 2004.04.14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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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상에서 공화정의 구조와 공화정의 발달과 함께 보조를 맞춰온 신분투쟁의 전개과정과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공화정의 구조에서 귀족과 평민의 타협을 이끌어낸 신분투쟁은 로마 국가를 체계화한 법률과 제도의 완성을 통한 공화정의 발달과 이후 로마가 이탈리아는 물론 지중해 연안일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제국건설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공화정 후기에는 형식상으로는 시민의 민회들과 동료 정무관들과 귀족들의 원로원 사이에 권력을 분산시킨 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실질상으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변질되고 만다.
여러 가지 참고문헌들이 많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문헌을 참고로 하였지만, 공화정과 신분투쟁이라는 로마역사의 흐름에서 쏟아져 나온 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한눈에 조목조목 살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목차
들어가며
1. 왕정기 로마사회의 구조와 공화정으로의 이행(移行)
2. 공화정(res publica)의 구조
1) 콘 술(consul)
2) 원로원(senate)
3) 민 회(comitia)
3. 신분투쟁(The Struggle of the Orders : 기원전 494~287)
1) 제 1차 분리운동 - 평민들의 철수
2) 호민관
3) 트리부스 평민회의 창설(기원전 471년)
4) 12표법
5) 칸슐러 트리뷴(consular tribunes) 칸슐러 트리뷴직의 치폐(置廢, 기원전 444~367년)
6) 정무관직의 발달과 평민들을 위한 개혁
4. 신분투쟁의 결과와 영향
나오며
본문내용
들어가며
로마 공화정기에 로마인들은 무력에 의해 지중해 세계와 그 광대한 후배지(後背地)를 정복하여 통일적으로 통치했다. 아프리카 북부해안의 동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지중해와 바닷물이 스치는 거의 모든 지역을 그들의 영토로 만들어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 부를 수 있는 제국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또한 정복지의 평화를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다양한 민족들을 통치함으로써 법률과 행정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했다.
로마사는 헌정(憲政)상으로 왕정, 공화정, 제정(帝政)이라는 서로 다른 통치형태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상이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세 정체(政體)의 변천은 로마인들이 역사를 형성해간 진보의 과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공화정의 정착과 공화정기에 지배귀족들과 평민계급사이의 2세기 가량 진행된 신분투쟁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의 전개 양상과 그것이 로마 국제(國制)에 끼친 영향이다. 이에 앞서서 로마 왕정기의 사회구조에 대한 간략한 언급을 통해 중심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왕정기 로마사회의 구조와 공화정으로의 이행(移行)
왕정기 로마 사회구조의 실상은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체제였다. 왕권은 단지 외부 지배세력의 상징일 뿐이고, 로마사회는 사실 소수의 혈통 귀족들(patricii)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왕(rex)은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대외적 업무에 대한 책임을 졌다.
참고 자료
1. 배영수 편,『서양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92
2. 허승일 저,『증보 로마 공화정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
3. 김진경 외,『서양 고대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6
4. 허승일 저,『로마공화정』,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5. 프리츠 하이켈하임 저, 김덕수 역,『로마사』, 현대지성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