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
- 최초 등록일
- 2003.12.26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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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주거문화 유적지 답사 노선
II. 유적지 답사하기 전에 미리 공부하고 가야할 선행내용
1. 마을의 역사와 주요 건축물
2. 마을의 형국과 정전법(井田法)의 적용
3. 마을내 건축물의 건립시기
III. 유적지의 특성
1. 마을내 주요 건축물(재실)
2. 마을 내 주거의 건축적 특성
3. 마을의 건축적 의미와 가치
본문내용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는 조사 지역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성군 본리 번지에 속한다. 흔히 인흥이라 부르는 마을로, 세거지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 3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존되고 있다. 본리리는 행정구역상 본리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다. 인흥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는 대구부 인흥면의 소재지였으며, 그 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달성군 화원면에 편입하였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의 성립은 인산재 문경호(1812~1874)가 19세기 초반에 현 세거지 인근에 자리잡은 뒤 1834년에 용호재를 광거당 터에 지음으로써 세거지가 되었고 차차 문씨 대소가의 주택들이 지어져서 1940년에는 거의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일찍부터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이 마을 남평 문씨는 인근 마을의 타성 소작인들을 써서 광작농업을 경영하는 등 꾸준히 경제력을 향상시켜 왔으며, 인접한 다른 마을과는 달리 같은 씨족의 상류층 주거지로 발전하였다. 마을의 형성과 관계된 경제적 기반을 볼 때 문경호가 인흥으로 들어올 때 어느 정도 재산을 분배받아 들어와 현재의 세거지에 자리잡은 후 그의 자녀들이 경제적인 기반을 닦은 것 같다. 특히 그의 손자인 봉성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다. 그는 축적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와집을 짓고 경제력을 일으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