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내력] 김해김씨의 유래와 유명인물
- 최초 등록일
- 2003.12.11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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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해김씨의 내력과 김씨의 계파에 관한 정보와 김해김씨의 인물중 주요한 인물들(근현대중심)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목차
Ⅰ. 김해김씨의 유래
Ⅱ. 근·현대 김해 김씨의 내력
본문내용
Ⅰ. 김해김씨의 유래
서기 40년경 변한의 땅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과 임금의 제도가 있을 리 없었고 다만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留水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 등 9간이 백성들을 통솔하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백성들은 산과 들에 제각기 집단을 이루고 고기잡이와 농사일로서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인구가 늘고 생활수단과 사회형태가 발전함에 따라 이들은 나라형태를 갖춘 통치조직이 절실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나라를 다스릴 유능한 임금을 추대하여야 할 역사적 전환점에 이르게 되었다.
①경파
경파의 파조인 김목경(金牧卿)은 고려 충정왕 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당시 혼란한 국정을 개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상소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여생을 마쳤다. 김목경의 맏아들 김보(金普)는 공민왕이 세자 때 국가의 사절로서 중국의 북경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4)김근배(金根培)
1847(헌종 13)∼1910. 순국지사. 본관은 김해. 자는 광원(光元), 호는 매하(梅下). 전라북도 이리출신. 현교(顯敎)의 아들이다.
1866년 병인양요를 당하여 아직 약관의 나이로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지어 상소하였다.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가 되어 문명을 떨치다가,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사임하고 낙향하여 청장년들에게 훈육을 통하여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뒤 헌병주재소장을 통하여 그를 회유하기 위한 은사금(恩賜金)을 보내자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였으며, 앞으로 수없는 곤욕이 있을 것을 예견하여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키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우물에 투신, 순절하였다.
1980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자료
http://kimgane.new21.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