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후삼국 이후)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22.03.29
- 최종 저작일
-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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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원종애노의 난 : 889년(진덕여왕3년) 신라 사벌주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이다. 신라는 하대 이후 진골귀족간의 왕위쟁탈전이 계속되면서도 경주를 중심으로 사치, 향락의 풍습이 만연하여 지방에 대한 착취가 더욱 가혹해졌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점차 토지로부터 이탈되어 갔고 중앙의 정치기강은 문란해졌으며 지방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되었다. 이에 중앙정부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조세를 독촉하였으나, 이미 중앙의 위령이 땅에 떨어지고 병제가 쇠퇴해지면서 토호가 발호하게 된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지방의 동요를 일으켰다. 이에 곳곳에서 조세의 납부를 거절하고 농민봉기가 발생하였는데 원종 애노의 난은 그 중 최초다.
*후백제-견훤(892~935) :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이씨였으나 후에 견으로 씨를 삼았다. 아버지인 아자개는 농사를 지으며 자기 힘으로 살다가 후에 가문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918년 아자개가 태조에게 항복을 했을 때 900년 견훤은 완산주에서 후백제 왕을 자칭하였듯이 견훤과 아버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견훤의 반기 : 892년 나라 기강이 문란해졌고 기근이 드니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도적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견훤은 몰래 왕위를 넘겨다보는 마음을 갖고, 무리를 불러 모아 왕경의 서남쪽 주,현을 돌아다니면서 공격하였다. 이르는 곳마다 메아리처럼 호응하여 열흘에서 보름사이에 무리가 5천 명에 달했다. 과거에 서남 해안쪽에서 조세를 받기 위해 백성들을 독촉해 민심이 좋지 못해 무진주를 습격해 892년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아직 공공연히 왕을 칭하지는 못했다.
*경애왕이 죽은 후 당시 신라 상황 : 927년 9월 견훤이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왕위에 세웠다. 경순왕을 왕으로 세운 견훤이 얻은 성과는 당시 고려와 친했던 신라를 친후백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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