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21.06.01
- 최종 저작일
- 2020.06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보길도 기행문
보길도를 가을에 기행하고 쓴 기행문
목차
Ⅰ. 도입
Ⅱ. 여정
1.보리밥집
2.고산 윤선도 묘소
3.노화도 선착장
4.송시열 시조바위
5.숙소
6.낙석재
7.세연정
8.동천석실
9.황칠나무
Ⅲ. 결말
Ⅳ. 오우가
본문내용
1. 도입 :
윤선도는 선조 20년(1587)에 나서 광해군, 인조, 효종 대를 거치고 현종 12년(1671)에 돌아갔다. 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유례없는 변란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당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서인이 득세한 시기였다.
그의 집안은 누대에 걸쳐 벼슬을 한 명문이었고 재산도 유족했지만 남인 집안이었다. 이 때문에, 또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고 따지고 들어서 때로 ‘도량이 좁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자신의 꼬장꼬장한 성격 때문에 윤선도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85세라는 장수를 누렸으나 그 가운데 세 차례에 걸친 유배로 20년 남짓한 세월을 보냈고 그 사이사이에 해남의 금쇄동과 보길도 부용동 등에서 19년 가량을 숨어 살았다.
그러나 그의 은거는 ‘골짜기에서 고사리를 캐는’ 생활은 아니었다. 그는 집안의 재력을 바탕으로 오히려 화려하다고 할 만한 은거 생활을 하였고, 그 가운데서 저 유명한 「오우가」를 포함한 「산중신곡」 「산중속신곡」이라든지 「어부사시사」 「몽천요」 등 그 자신을 우리나라 단가 문학의 거성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들을 남겼다.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는 뱃사공을 향해 빼어난 산수에 매혹되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뱃머리를 돌리라고 외쳤을 보길도,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문학의 2대 산실이된 그곳 보길도를 운좋게 한마음 문학 기행반에 가입 30주년에 함류하게 되어 방통대 선후배님들과 버스에 올랐다.
처음 보는 선후배와 2박 3일의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모두 방통대를 졸업하신 동문들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를 때 선물처럼 받은 고산 윤선도 시인의 책은 차에서 간간히 무료함을 달래며 도착전 사전 지식용인줄 알았는데 출발과 함께 도착하는 순간까지 고산 윤선도의 시를 읽고 해석하며 10시간을 버스에서 공부를 한 덕택에 지루함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또 영원히 회자될 추억이 되어 여러 지인들에게 즐거운 추억담으로 소개될 정도로 처음 경험이며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