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화의 학술사상
- 최초 등록일
- 2021.05.20
- 최종 저작일
- 20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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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장자화의 학술사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장자화는 누구인가?
1.1 금원시대의 특징
1.2 年歷
1.3 학문적 배경
1.3.1 하간학파?
1.3.2 황제내경, 난경, 상한론
2. 장자화의 학술 사상
2.1 病因
2.1.1 邪氣
2.1.2 五鬱
2.2 治病原則
2.2.1 汗法
2.2.2 吐法
2.2.3 下法
2.3 장자화의 한토하 삼법의 차별점
3. 의의와 한계
3.1 의의
3.2 한계
3.3 현대사회에서의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장자화는 누구인가?
1.1 금원시대의 특징
-전쟁 빈발, 질병 발생
기존에 쌓여온, 특히 송대에 축적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 하지만 각 의가들 간의 경험과 견해의 차이 때문에 이것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여러 의가들 간 논쟁이 존재하였다. =>금원사대가
-온조한 약물 과다 사용
黃帝內經素問에서 邪之所湊, 其氣必虛라 하였는데, 장자화 대의 의가들은 이를 모든 병이 몸의 원기가 허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해석하였다.
이 때문에 송대에는 대부분 몸을 보익해 정기를 증진시켜 이겨내는 병을 처방하였고, 이는 대부분 계지, 마황탕류의 온조한 처방이었다. 특히 송대 반포된 화제국방은 개인들이 자신의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해 먹을 수 있게 하였는데, 이 역시 온ㅇ조한 보익 약물이 대부분으로 개인들 역시 스스로 온조한 약물들을 처방했다.
이를 유완소 등은 “화로써 화를 돋운다”라 설명하며 火熱論을 주장하며 새로운 치병원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렇듯 금원시대에는 기존의 한의학 패러다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논조의 한의학 논리들이 성립되었다. 장자화 역시 기존 한의학의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의학의 지평을 열어간 인물, 금원사대가 중 한 명이다.
장자화, 유완소 등의 금원 사대가는 기존의 처방에만 의지해 치료를 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현 세태에 맞춘 새로운 치료방법을 제시했다.
1.2 年歷
본명은 張從正(장종정), 字는 子和(자화), 號는 戴人(금인). 金나라의 正隆 元年에서 正大 5년(1156~1228)대의 사람이다.
금나라 1217~1222년 태의로 뽑혀 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능했지만 공하법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당대 많은 태의들이 온보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오래지 않아 벼슬을 포기했다.
저서로는 유문사친 15권이 유일하고, 그 15권 중에서도 3권만 본인의 단독 저작이고 나머지 12권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작성한 것이다.
참고 자료
구결성, 한의학 서양의학을 만나다, 군자출판사, 2010
주?현,”중국의학삼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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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중의명가학설
은석민, 鬱’ 개념에 대한 역대의가들의 인식에 대한 고찰 - 張子和의 논의를 중심으로
김기욱 외, 유문사친의 토법에 관한 연구
김기욱 외, 유문사친의 하법에 관한 연구
김기욱 외, 유문사친의 한법에 관한 연구
김중환, 유문사친에 나타난 장자화의 학술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