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군사정책과 군사사상(근대 군사정책 / 사상)
- 최초 등록일
- 2021.04.09
- 최종 저작일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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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과제로 작성한
대한제국의 군사정책과 군사사상입니다.
* 근대의 군사정책 / 군사사상
일반적인 논문의 형식으로 작성되어 있고, 근대의 군사정책을
다루는 참고서적이 많이 없어 자료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내용에 충실하고,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주제에 맞게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결론에는 논문의 본문인 대한제국의 군사정책과 국군의 발전상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발전방향도 함께 제시하였습니다.
(학부생의 졸업논문으로도 손색이 없음)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가. 대한제국의 군사정책
1) 대한제국의 성립과 군사정책
2) 원수부의 설치와 군사 제도의 발전
나. 대한제국의 국군과 군사사상
1) 대한제국의 국군
2) 일제침략과 의병활동
3) 독립군 활동
4) 임시정부와 광복군
5) 의병, 독립군, 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군사사상
가) 전쟁수행신념
나) 군사력 건설
다) 군사력 운용
3. 결 론
본문내용
고종은 자신이 직접 군사지휘권, 즉 군령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원수부를 창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고종의 의도를 반영한 원수부는 약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899년 6월 22일 원수부관제의 반포로 시행되었다. 원수부관제는 3관 22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관에서는 국방과 용병과 군사에 관련된 모든 명령을 관장하며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군부와 중앙 및 지방의 각 부대를 지휘 감독하는 원수부의 권력범위를 명시하고, 대원수인 황제가 원수인 황태자를 경유하여 명령을 하달하는 것으로 명령전달체계를 천명하고 있다. 제2관에서는 원수부의 구성과 각 관의 임무 및 구성원, 제3관에서는 원수부 명의로 실시하는 시찰과 그에 대한 결과보고의 절차 및 원수부 소속 무관의 복장 등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원수부는 군무국과 검사국, 기록국, 회계국 등 4개국으로 구성하여 원수의 명령에에 따라 무관 1명이 재경 각 부대를 시찰하고 3명으로 지방 각 부대를 시찰하여 대원수와 원수에게 보고함으로써 중앙군과 지방군을 감독 하였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직후인 4월에 친위대대를 통합하여 친위 1연대로 편성하는 등 중앙군에 대한 개편 작업이 전개되고, 지방에서는 과거 군인이었던 해산 군인들을 다시 수습하여 '지방대'로 편성하는 작업이 5월부터 9개 지역에서 추진되었다. 8월에는 4개 군에 지방대가 추가 설치되기도 하나 1개월만인 9월에 7개 지방대 편제가 폐지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와중인 10월에 러시아 교관단으로부터 친위대 군인들이 차출되어 교육을 받은 정예병을 시위대로 명명되고, 지방군도 1897년 6월에 8개 지역 5천여 명을 편성하였다.
1897년 전반기에 러시아의 군사교범류들을 번역하여 훈련지침서로 활용하고, 1898년 5월에 무관학교를 설치하여 우수한 무관을 양성하였으며, 이들 무관들은 표준이 될 만한 훈련교범을 편찬하고..
<중 략>
참고 자료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혜안, 2000
최원식, 『국군의 정통성을 기초로 한 군사사상 연구』, 육군대학 2009
조동남, 『대한제국의 한국사 요약본』, 충남대, 2009
김종호,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선포와 근대화 정책』,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