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비전 서평
- 최초 등록일
- 2021.03.11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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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 내용 요약
1. 우리는 누구인가?
2. 나는 어디에 있는가?
3.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4. 그 치료책은 무엇인가?
Ⅲ. 결론 - 평가
1. 기독교 철학의 틀 정립은 너무나 이성 중심이 아닌가?
2. 공동체의 노력을 강조하다보니 개인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소홀한 것 아닌가?
3. 창조, 타락, 구속에 이어서 보다 발전적 대안은 없는가?
Ⅳ. 참고도서
본문내용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우리는 이 두 찬송을 즐겨 부른다. 그런데 이 두 찬송 사이에 괴리감이 생기지 않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과연 우리가 멀리하고 떠나야 할 곳인가, 아니면 이 세상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하늘나라의 한 부분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이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내면에 두 가지 가치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떠나야 할 세상인가,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세상인가? 도피하듯이 떠나야 할 곳인가, 주님을 모심으로 안식을 누리는 곳인가? 이 두 가지 세계관이 우리 안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이것은 우리 내부의 갈등이요 충돌이다.
우리의 외부에도 세계관의 충돌이 있다. 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다수에 의해서 채택된다. 다수가 신봉하고 추종하는 세계관이 있다. 그것은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다수는 대체적으로 진리에 대해서 외면하는 경향성이 있다. 다수의 지배적인 세계관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호불호(好不好)의 문제이므로 진리와는 상충된다. 진리에 의해서 세계관을 수정하려고 해도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과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을 등한시 한다. 그러다 보니 진리는 언제나 소수에 의해서 받아들여진다. 다수가 신봉하는 세계관과 소수가 받아들이는 세계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세계관이 한 사회 안에 존재한다. 그것이 세계관의 복수성이다.
수많은 세계관의 교차와 충돌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세계관 위에 서야 할 것인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세계관의 세례는 과연 필요한가? 수많은 세계관을 다양성과 포용성의 명목하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관의 내적인 통일성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본 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비전』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학문적 도구와 이성적 논리로 재평가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리즈먼, 데이비드, 권오석역, “고독한 군중”, 서울:홍신문화사, 1994.
월터스, 알버트, 양성만 역, “창조, 타락, 구속”, 서울: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2.
칼빈, 존, 로고스번역위원 역, “기독교강요”, 서울:로고스출판사, 1987.
호튼, 마이클, 윤석인 옮김,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 서울:부흥과 개혁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