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의 구석기 문화
Ⅲ. 석기의 제작과 종류
Ⅳ. 금강유역의 구석기 문화
Ⅴ. 공주 석장리 유적의 유물조합과 문화
① 전기 구석기 문화층
② 중기 구석기 문화층
③ 후기 구석기 문화층
④ 중석기 문화층
Ⅵ. 맺음말
Ⅶ.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구석기시대의 생활은 주로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였다. 특히,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협동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정 규모의 공동체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공동체 조직의 구체적인 모습은 잘 알 수 없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을 조각한 유물이 보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구석기인들의 예술활동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이러한 활동은 주로 주술적인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일련의 구석기시대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 ‘공주 석장리 유적’ 이다. 석장리 유적 발굴은 구석기시대가 한반도에 존재하였음을 알려준 한국구석기고고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발제에서는 이러한 구석기시대의 개관과 더불어 금강유역의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의 층위별로 나타나는 시기적 변화과정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Ⅱ. 한국의 구석기 문화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적 구분으로 제 4기 홍적세로, 유인원에서 사람이 진화하여 도구를 만들어 쓴 때부터 농경이나 목축 또는 토기 제작이 되기 전까지의 문화단계로 약 250만년 전부터 1만년 사이에 해당된다. 이 동안 고인류는 사냥과 채집경제를 바탕으로 이동생활을 하였던 시기이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도 적어도 150만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하였으며 중국의 전 지역에서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른 시기의 고인류의 화석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석기유적들이 한반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어서 홍적세 이른 시기에 고인류가 유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반도에는 백두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빙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빙하의 주변으로써 기후상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 나타났다. 한반도 북부의 고산지대에는 산간빙하가, 황해에는 거대한 분지, 동해에는 내륙호를 들 수 있다. 또한 쌓임층이나 단구와 같은 지형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형에서 현재 국내에 다양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참고 자료
김권중, 『청동기시대 고고학 5, 도구론』, 서경문화사, 2004.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강의』, 사회평론, 2007.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 탐구당, 2003.
이훈, 「선사유적」,『공주문화유적』, 공주대학교 박물관, 1995.
연세대학교 출판부, 『우리나라 구석기문화』, 연세대학교 박물관, 2002.
(재)충청문화재연구원,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사적 제334호)문화재 보호구역 확대를 위한 석장리 구석기유적 13차 발굴조사』, (재)충청문화재연구원, 2012.
성춘택, 「한국 구석기 시대 석기군 구성의 양상과 변화 시론」, 『한국산고사학보』 제 15호, 2006.
박희현, 「韓國 後期 舊石器時代의 生活과 環境」, 『백산학보』 제 75권, 1974.
손보기, 「석장리의 전기, 중기 구석기 문화층」, 『란국사연구』, 제 7권. 1972.
손보기, 「석장리의 후기 구석기시대 집자리」, 『한국사연구』 제 9권, 1973.
손보기, 「층위를 이룬 석장리 구석기문화」, 『역사학보』 제 35, 36권, 1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