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국가의 형성과 절대 군주정
- 최초 등록일
- 2020.09.11
- 최종 저작일
- 2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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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영토 통합
Ⅱ. 합스부르크와 발루아의 전쟁
Ⅲ. 국왕 주권론과 정치문화
Ⅳ. 절대군주론
Ⅴ. 전쟁의 영향
Ⅵ. 상비군과 조세
Ⅶ. 관료제와 중앙집권화의 실상
Ⅷ. 귀족의 변신과 혼합
Ⅸ. 후견 조직망
Ⅹ. 요약
본문내용
16세기 이후, 유럽 각국의 군주들은 영토 확장과 권력 강화를 위해 상비군과 조세 제도를 통해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했다. 나아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과 원칙으로 정치를 시도하였다. 강력한 권력 및 체계적인 국가의 완성을 위해 행정, 사법, 재정 등 다방면에서 신민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였다. 역사가들은 이론화된 절대 군주정의 제도적 효율성을 강조하며 근대성을 옹호하였으나,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전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조세 저항 및 사회 각 계층의 반란은 절대 군주정의 문제점을 보여주었고, 사회에 대해 효율적이지 못했음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이번 블로그에서는 절대 군주정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Ⅰ. 영토 통합
1500년경 유럽 정치사는 영토 통합의 과정이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이 이 시기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며 또 모든 지역에서 그러한 현상이 전개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이후 정치 단위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장기적인 농업 침체와 인구 위기가 극복되었다. 정치적 권위도 회복되면서 정치체질의 재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시기의 통치체제는 주로 세습 군주정으로 나타났다. 세습 군주정의 정통성은 왕위를 계승하는 가문의 지속성에 달려 있었으며, 이런 의미에서 세습 군주정은 왕조국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오랜 전통과 혈연적 뿌리에 기반한 왕조국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왕실의 번창과 왕령지(王領地) 확대였는데, 특히 결혼은 영토 통합을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활용되었다. 1469년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Aragon) 왕국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으로 에스파냐가 탄생했고,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막스밀리안 1세와 부르고뉴 공작의 외동딸 마리의 결혼을 통해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부유한 북서 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때 마리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간 플랑드르,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브라반트가 합스부르크 가에 통합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