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일 중국에서는 상이한 정치 행사 두 가지가 진행됐다
- 최초 등록일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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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일 중국에서는 상이한 정치 행사 두 가지가 진행됐다.베이징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군대 열병식이 벌어졌고,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의 최첨단 무기를 선보였다.그리곤, 10만 군중과 약 1만 5천명의 병력이 열병식 행사에 참여하여 전 세계에 중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듯 했다.반면 홍콩에서는 ‘애도의 날’ 대규모 시위가 진행됐다.무질서한 상황이 연출됐고 시위대는 화염병을,경찰은 최루탄을 던졌다.상당히 대조적인 정치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공산당 지도부는 시진핑 체제를 출범시킴으로써 중국의 위상,자신감,강함을 대외적으로 드러냈다.그렇지만 정작 내부는 공산당 통치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과 불신으로 불안감이 가득했다. 2019년 홍콩 사태는 이러한 중국의 대외적 자신감과 내부적 불안감이 충돌하여 발생했고 전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시위가 발생한 배경에는 민주화,반세계화,반중국화라는 구조적 배경이놓여있다.먼저, ‘민주화’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영국 식민지 시기 당시 홍콩은 완전히 민주적 제도,민주적 자치를 누리지 못했다.영국이 홍콩 총독을 임명하여 최고 행정권자로 세웠으나,입법회는 그저 자문 기구에 불과했다. 97년도 홍콩 반환 이후에 많은 홍콩 시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고 나섰고,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끊임없는 정치적 협상은 최소 30여년간 지속됐다.민주화를 염원하는 이상,그리고 현실 간의 긴 세월에 걸친 괴리와 간극이 2014년 홍콩 시위, 2019년 대규모 홍콩 사태(시위)의 원인이 됐다. 98년도 중국과 영국은 오랜 협상을 했다.그 끝에 영국은 중국에 홍콩을 영원히 반환하겠다며 중영 공동 선언을 맺었다.홍콩 반환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감을 잠식 시키기 위하여 중국은 ‘일국양제’ 원칙을 내세웠다.그리고 이에 따라 약 50년 간 홍콩이 가져온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고,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참고 자료
경향신문. 2019. “‘홍콩 문제’ 떠안은 한정 상무위원, 경제통합으로 실마리 찾을까”(11월 6일).
류영하. 2014.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 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부산: 산지니.
손인주. 2020(未刊). “두려움의 정치: 시진핑 권력 강화의 심리적 동인.” 『한국정치학회보』 54집 1호
중앙일보. 2019. “2019 홍콩몽 vs 중국몽”(12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