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인가?
- 최초 등록일
- 2020.06.13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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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
과연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 8장에 걸쳐
분석하였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부터 1794년 까지 약 5년간 일어난 혁명으로 국가의 왕, 루이 16세의 목까지 잘라버린 아주 큰 혁명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국왕인 루이 14세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을 파산 위기에 까지 몰았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는 심지어 이러한 와중에도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베르샤유 궁전 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가 소집되었지만 제 3신분에게 불리한 조건이 정해지자 3 신분들은 모여 국민의회를 조직하였고,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맹세 하였다. 악조건 이 겹치게 되면서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시작으로 무장 봉기를 키워 나갔고, 결국 제도적인 봉건제가 폐지되었다. 여기 까지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사실들이다. 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데, 현대에 와서는 다양화 되었지만 20세기 중반 전까지는 정통적인 해석 하나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정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근대 철학이 프랑스로 들어오면서 계몽 서적들을 읽은 부르주아들은, 더 이상 ‘앙시엥 레짐’(구체제)이 근대 사회에서 알맞지 않은 체제임을 깨닫는다. 이를 변혁하기 위하여, 즉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앙시엥 레짐’의 정점에 서 있는 루이 16세까지 처형하였다. 혁명 이후 부르주아들은 구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권력 계층이 되었으며 자본주의 국가로 나아가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것이 부르주아 혁명이다. 이러한 해석을 ‘부르주아 혁명’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혁명에 참여한 부르주아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서 라기 보다는 혁명 자체의 방향과 이념을 부르주아 집단이 제시하고 이끌었다 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다수의 평민들이 같이 들고 일어나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또한 부르주아 집단들은 작은 봉기부터 혁명까지 참여한 가난한 농민(평민)들 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을 지라도......<중 략>
참고 자료
은은기(2011),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해, 계명사학회, 22, p. 139-159, p. 145
김인중(1989.12), 프랑스 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 창작과 비평 p. 247~248
Ibid., p.246
Alfred Cobban(1964), The Social Interpretation of the French Revol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최갑수(2000), 한국의 변혁운동과 부르주아 혁명, p.126-128
A.J. Mayer(1981), The Persistence of the Old Regime